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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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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배우는 성숙한 인간을 향해 간다- 이훈호(극단 장자번덕 대표)

휩쓸려 살지 않고 순간을 살아도 참되게 살도록…

  • 기사입력 : 2013-08-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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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작업은 전체의 끈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장면 한 장면을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 장면은 배우들의 순간순간이 모여 완성이 되구요. 해서 연극연습은 배우가 순간순간 할 일을 찾는 것으로 짜여집니다. 그러고 보면 배우예술은 망각의 예술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알면서도 잊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무대에서 배우가 자신의 에고를 버리고 ‘순간’에 ‘자신’을 던진다는 것은 가장 성숙한 인간의 모습의 발현일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하시는 분들도 “우리는 언제나 시방(時方), 즉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과거에 살거나, 미래에 살기 쉬우니 시방에 제대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시는데 이 힘든 일을 구체적으로 행해야 하는 사람이 배우이니 배우란 참 어려운 일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卽時現今 別無時節. 즉시현금 별무시절입니다. 중국의 임제 스님이 특히 강조하신 말씀인데 “지금 이 순간 이것뿐이다”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뿐 다른 시절은 없다”가 정확한 뜻일 겁니다.

    불가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삼세를 말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라 없어진 것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 없는 것이니 오직 지금 현재만이 영원하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그 현재라고 하는 개념조차도 순간순간 일어나고 스러지는 생멸의 연속선상이니 말이 현재일 뿐 현재라고 하는 개념도 엄밀히 말하면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시간 속에 과거도 녹아들어와 있으며 미래도 펼쳐져 나가는 것이니 현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연극의 생명이며 생생함은 내가 내 무대 영역을 장악하고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뭘 해야 된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그것에 대한 반응인 자신의 마음의 모양새를 합당한 말과 행위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배우의 무대에서의 삶은 이러합니다. 이 삶을 향해서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일상에서 여러분은 시방 무엇을 보고 있고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있는지요? 그리고 시방 자기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지요? 그곳에 내 마음을 두고 그곳에서 숨 쉬고 사시는지요?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쫓아서 사느라 내 마음 쉴 곳 한자리 없이 마음도 숨도 잊은 채 망각의 시간을 보내시지는 않는지요?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는 일, 타인에게서 행복을 찾기보다 내 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시방 지금 여기에 모든 내밀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시방을 잘 사는 사람은 순간을 살아도 참되게 사는 사람이요, 시방을 모르고 휩쓸려 사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산다 하더라도 빈껍데기이니 시방이라는 말만큼 진실한 답은 없는 거 같습니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고, 살아있음의 행복감으로 충만하여 사는 인생이 참되지 않을까요?

    이훈호(극단 장자번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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