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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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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귀촌 단상- 손영희(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3-08-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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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도 가꾸고 자연과 더불어 살자는 게 우리 부부의 오랜 바람이었다. 마침 남편도 정년퇴임을 하게 되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을 하게 되었다.

    전에 사 놓았던 도시 인근의 야산에다 10평짜리 조립식 주택을 지어 이사했다. 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들어보는 여러 종류의 새소리가 들리고 문만 열면 온통 초록빛 세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새벽이면 발아래 펼쳐진 들판으로 안개가 굼실굼실 퍼레이드를 하며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잘 왔다 싶었다. 마치 우리를 위해 나무들이 자라고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도 잠시 들러 놀다 가는 듯했다. 지인들을 초대해 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나물로 대접도 하고 욕심 없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 모습을 자랑삼아 보여줬다.

    동네 분들이 하는 대로 고추도 심고 호박도 심고 꽃밭도 만들고 잔디도 심었다. 채소는 사지 않아도 자급자족이 될 것 같아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건강식품에 대한 지식을 쏟아내고 있어서 거기서 배운 대로 이것저것 발효액도 만들기 시작했다. 지천에 널려 있는 게 다 약초란다. 나중에는 잡초를 뽑으면서 이 풀이 약초가 아닐까 뽑기를 망설이게 되었다.

    여름이 왔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방 안으로 들어와 기어 다니기 시작했고 심지어 자고 있는 옷 속으로 들어와 살을 무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모기는 밖을 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극성이었다. 소매 긴 웃옷과 두꺼운 바지를 입고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나가도 한 시간을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집 주변으로 대나무 숲이 있고 주위가 온통 풀밭이어서 모기가 서식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거미는 방 안의 책과 책 사이에도 거미줄을 쳤다. 밤이면 나방과 그 유사한 벌레들이 불빛을 보고 모여들었다. 가시가 있는 넝쿨식물은 잘라주지 않으면 방안까지 줄기를 뻗고 들어올 기세였다. 산에 심은 매실나무들은 주위의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남편과 나는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 매실나무 주변의 나무들을 잘라주기 시작했지만 자른 나무 둥치에서 금방 새순이 올라오곤 했다.

    텃밭의 채소들은 처음에는 잘 자라는가 싶더니 누렇게 떡잎이 지고 시들시들해졌다. 약을 치지 않으니 벌레들이 먼저 시식을 하고 고라니와 멧돼지는 언제 다녀갔는지 새순을 잘라먹고, 겨우 뿌리가 앉기 시작한 고구마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태양은 공기가 맑아선지 바로 내리쬐어서 피부는 금세 까매졌다. 귀촌에 대한 기대감이 한 계절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 집 안 여기저기 거미줄을 쳐놓은 거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방으로 줄기를 뻗는 식물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는 나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이 땅이 그들의 것이었다. 내가 와서 내 편리한 대로 땅을 고르고 울타리를 치고 저들의 영역을 침범했던 게 아닐까. 벌레들은 제 집을 빼앗긴 꼴이고 나무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베어지고 풀은 잡초라는 이름으로 제 존재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고라니가 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고 고추에 약도 치고 다시 여름이 오기 전에 모기약도 살포해야 할지 모르지만 외출해서 밤늦게 돌아와 차에서 내리면 쏴하게 쏟아지는 달빛에 매료당하고 반짝하고 빛나는 수많은 눈동자처럼 지척에서 빛을 내뿜고 있는 별들이 있어 한여름의 고난들을 잊게 해준다.

    이제 곧 가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또 봄은 올 것이다. 자연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호되게 자연앓이를 하는 중이다.

    손영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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