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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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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조금씩 알아가는 사이- 민창홍(시인)

  • 기사입력 : 2013-07-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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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 연예인이 열애설 보도 이후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사이’라고 인정하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모두는 조금씩 알아가는 사이가 아닌가 하고 반문을 한 적이 있다.

    이제 갓 만남을 시작하는 사이라고 순수하게 들렸다. 또한 ‘예쁘게 사랑을 키워가는 중이니 지켜봐달라’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젊은 남녀의 연애와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고 축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조금씩 알아가는 사이’가 젊은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이웃과 직장에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세태가 이웃이나 주변인에 대해 아예 알려고 하지도 않고 간섭과 방해를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내 주변의 사람들 서로가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적당한 긴장과 신비가 존재하여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그것이 관심이라고 해도 좋고 사랑이라고 해도 좋다.

    때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산다. 만약 다 안다고 한다면 누구를 탓하기 전에 관계는 소원해질 것이다. 꼬마 아이들이 새로운 장남감을 사주면 신기해하면서도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 쳐다보지 않고 다른 것을 찾는다. 이처럼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싶으면 싫증을 내고 더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아마도 좋은 친구로 좋은 이웃으로 남아 있는 관계라면 아직도 신비감이 남아 있는 것이리라. 또한 그 무엇을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 절대자처럼 서로를 다 알고 살 수는 없다. 30년 넘게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부에게도 서로를 완전하게 안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조금씩 알아가는 사이의 끝은 없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알아가는 여정만 있을 뿐이다. 간혹 ‘한눈에 반해’ 결혼했다는 사람들도 특정 이미지에 대한 특별한 호감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그런 사람들도 살아가면서 조금씩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기에 추억처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깊이는 계량화될 수 없다.

    얼마 전에 통영의 대건성당에서 봉헌된 제옥례 수필가의 백수(白壽) 기념 미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한국문화예술단체 통영지부장을 역임하는 한편 4권의 수필집을 상재하였고 신심을 바탕으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여 대한민국 여성복지 유공자 훈장, 로마교황청 십자훈장을 받은 분이다. 성당의 전 교우들이 뜻을 모아 백수 잔치를 하게 되었다는 주최 측에서는 통영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까지 소개하였다. 그런데 정작 그분은 “모든 허위를 떨쳐버리고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흔아홉을 살아오면서 봉사와 사랑으로 산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연세에도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닐까. 백 살을 앞두고도 아직까지 자신을 다 모른다고 기도하는 노(老) 수필가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살다 보면 적절하게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가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자신에게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모르는 게 낫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은 참으로 필요하다. 백수를 사신 분도 진정한 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도 때로는 자기 과신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제발 겸손해지자. 무엇이 그리 잘났노 하고 질책해 본다. 불같이 만나지 말고 흐르는 개울물처럼 도란도란 알아가면서 살자.

    정보화 시대이다. 우스갯소리로 다 알면 다친다는 말도 한다. 상대가 나를 많이 안다는 것도 부담되는 시대다. 조금씩 알아가다가 어느 한순간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급격한 변화는 충격을 수반한다. 그래서 불신으로 이어진다. 무슨 일이든 한꺼번에 다 알아버리면 탈이 날 수도 있다. 백수를 맞이한 수필가의 바람대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어느 연예인의 말처럼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

    민창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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