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탄 손영호 씨가 노모와 둘째 아들 상모, 아내와 함께 지난 28일 하동군 화개면 용강마을 자신의 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불쑥 찾아올 수 있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다.’
후천성 하지기능지체 1급 장애인으로 77세 된 노모와 아내, 두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손영호(43·하동군 화개면) 씨는 30세까지만 해도 당당한 청년으로 미래를 향해 내달렸던 터라 이런 불길한 예감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당시 손 씨는 고향 하동에서 학업을 마친 후 강원도 원통에서 포병으로 군대생활을 마치고 인근 전남 구례에 있는 모 전자회사에 다니며 성실한 삶을 일궈나갔다.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터라 어느 날부턴가 오른쪽 목덜미에서 잡히기 시작한 2개의 멍울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중병의 전조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가 30세였다.
“갑자기 밥맛도 없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병원에 가니 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진주의 큰 병원에 가서 검진하니 임파선 결핵이라고 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유명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병세가 호전돼 다시 회사에 복직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질병에서 벗어나 32세 되던 해, 같은 직장 6살 연하의 아리따운 처녀를 만나 결혼도 했다. 첫아들을 얻어 새록새록 행복감에 젖어들 무렵, 불행이 다시 시작됐다. 34세때 임파선 결핵이 재발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장애증상이 없어 경제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나 사정이 달라졌다. 결핵균이 굳어져 신경다발을 누르면서 하반신 마비가 온 것이다.
큰아들을 얻고 4년 만에 얻은 작은 아들 상모까지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첫돌이 지나고 4살이 될 때까지도 스스로 걸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니 출생아 수백 만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희귀 난치병인 근위축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부모의 염색체가 불일치하거나 부조화로 인해 생기는 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앞이 캄캄했다. 자신의 후천적 하반신 마비 장애도 감내하기 힘든데 둘째 아들에게까지 선천적 하반신 장애가 찾아오다니, 생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 노모와 사랑하는 아내, 두 아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경제능력을 상실해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 마련이 난감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모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아내도 자신과 둘째 아들 병수발 때문에 일하러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정부로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가구로 지정받으면서 생계·주거비와 장애인연금, 장애아동수당을 받아 근근이 연명하게 됐다. 하지만 두 아들의 치료·교육비는 충당할 수 없다. 오는 5일 서울대병원에서 상모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근위축증이 진행되면서 왼쪽 등근육이 약해져 척추가 계속 휘기 때문이다. 큰돈이 들어갈 텐데 어찌 마련할지 걱정이다. 당장 서울을 오가는 교통비와 숙박비부터 암담하다.
노모는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며느리가 정말 욕을 봅니다. 요즘 농촌에서 일당 4만~5만 원짜리 일거리가 많지만 나갈 수가 없습니다. 남편과 어린 자식이 하반신을 못쓰니 손발이 돼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늙은 제가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손 씨는 그래도 희망을 안고 산다. “젊은 나이에 처지를 비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주변에서 많은 사랑을 베풀어줘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줄기세포 개발이 성공한다면 제 병도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정말 열심히 벌어서 도움을 준 사회에 돌려드릴까 합니다.”
글·사진= 이상목 기자
※후원계좌 경남은행 719-21-0038105(예금주 손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