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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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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역사의 주체이자 주제로서 사람과 시의 품격- 김륭(시인)

  • 기사입력 : 2013-05-3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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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한국시인협회(회장 신달자)가 시로 쓴 ‘한국 근대 인물사’를 표방하며 펴낸 시집 ‘사람’이 논란에 휩싸였다. 이 시집은 한국시인협회 신달자 회장을 비롯 이 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우리 근대사에 있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고 헌신하며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 112인을 선정, 이를 시로써 재구성하고 집중 조명한 시집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첨예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역사적 인물과 이병철 전 삼성 회장,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등 재계의 인물들을 영웅화하거나 일방적으로 공적만 언급한 시들이 일부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개별 작품이 쓰여진 후 시인협회 차원의 감수 과정은 따로 없었다. 신달자 회장은 “시는 전적으로 시인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인협회의 이름으로 나온 시집인 만큼 시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지난 22일 시협 소속 일군의 시인들이 ‘한국시인협회를 생각하는 시인들’ 일동의 이름으로 성명서(다시 ‘시인’으로 돌아가자- 한국시인협회 회장 및 집행부께 드리는 글)를 채택, 한국시인협회에 전달했다. 내용은 이렇다.

    “시가 시인 개인의 의식과 역사관을 수용하는 창작물인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당대적 윤리에 관한 책임과 의무라는 미학적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시협 이름으로 간행되는 출판물은 회원 전체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사회적 수용의 당위와 가치를 고려하면서 보다 신중하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중략) 부끄럽습니다. 보수 언론마저도 여러 차례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했습니다. 시협의 청탁을 받고 순수한 마음으로 인물시를 게재한 무고한 시인들까지 함께 손가락질 받는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협회의 관행이 계속된다면 결국 우리 시협은 낡고 무기력한 예술단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많은 회원 사이에 팽배해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와 ‘시인’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는 생살을 찢는 심정으로 아래의 요구사항(1.‘사람- 시로 읽는 한국 근대 인물사’의 인물 선정 기준을 밝히고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집행부는 사과하라. 2. 문제가 된 도서 ‘사람- 시로 읽는 한국 근대 인물사’의 배포를 중지하고 전량 회수하라.)을 신달자 회장을 비롯한 현 한국시인협회 집행부에 전달하는 바입니다.”

    다음 날 즉시 한국시인협회 신달자 회장은 답했다. 요지는 이렇다. “관련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들의 충정 어린 마음을 온전히 받아 시집 ‘사람- 시로 읽는 한국 근대 인물사’를 전량 회수할 것입니다. 아울러 시집을 회수하기로 함에 따라 출판기념회(5월 30일)를 비롯한 모든 행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바로 이런 게 참다운 작가정신이며 역사의 주체이자 주제로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경남시단은 어떠한가. 불과 한 달 전이다. 지난달 27일, 마산 아리랑호텔에서 경남시조시인협회 주최로 열린 ‘노산 이은상 시조선집 가고파 출판기념회’에서 강연을 한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는 말했다. “마산 시민정신은 우둔하다.” 그리고 이은상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김병수 마산문인협회 회장은 “전국 자치단체가 조그만 이야깃거리만 있으면 그것을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려 하는데 마산에서는 특정단체에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하고 있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노산이 살아야 마산이 산다고 말했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불리는 마산을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아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경남문단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참으로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시대에 편승해 노산 이은상을 복원하려는 일부 지역문인단체들과 문인들은 할 말이 있을까? 역사의 주체이자 주제로서 사람과 시의 품격이 부끄러워지는 봄날이다.

    김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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