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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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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마음을 읽어주는 의사- 박귀희(수필가)

  • 기사입력 : 2013-05-0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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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일간지에서 대학병원의 진료실이 컨베이어벨트가 있는 공장같이 빠르게 돌아간다는 기사를 보았다. 의사가 컴퓨터 모니터만 보면서 진료를 하며, 진료실 칸막이 사이에 문을 내어 두세 개 방을 오가는 방식이어서 ‘모니터 진료’ 혹은 ‘컨베이어벨트식 진료’로 불린다고 한다.

    대학병원의 시스템이 그렇다 보니 정겨운 의사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환자와 의사의 면담시간은 기껏 30초에서 길어야 3분 정도라 한다. 그러니 환자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모니터의 진료기록에만 집중한 채 혼잣말을 내뱉듯 결과를 알려주는 무성의한 태도에 황당했다는 사람의 인터뷰도 실렸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 경험했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대학병원으로 옮겨 입원을 하게 되었다. 하필 담당주치의가 세미나로 자리를 비워 새내기 인턴이 어머니를 보살피게 되었다. 젊은 의사라는 것이 걸려 내심 불안했지만 기우였다. 새내기 의사는 보호자들이 충분히 면담할 수 있도록 짬짬이 시간을 할애해 주었고, 행여 회진 시간에 보호자를 못 만나면 직접 전화까지 걸어 일일이 증상을 설명해주었다. 어머니 상태가 걱정되어 간호사에게 말을 하면 바로 달려와 주니 한결 마음도 놓였다. 보통은 간호사에게 지시를 해 보호자가 의사를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생각할수록 고마웠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병이기에 더 친절한 것인지 모른다. 넘쳐나는 의사들 속에 살아남아야 하므로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열의를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랴. 동기가 어떤 것이든 결과적으로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하는 일이 될 수 있고 더불어 기존의 의사들도 자극을 받아 조금씩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대학병원으로 가기 전에 계시던 요양병원의 의사도 젊은 사람이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종일 누워서 지내는 환자들은 간병인이 있다 해도 따로 보호자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바빠서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환자의 상태를 세심하게 전해주던 의사였다. 언젠가 내게도 어머니의 병세가 차도가 없어 안타깝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증상이 점점 심해진다는 말을 듣고 당신 손자 결혼식 날까지만이라도 살아 계시게 해달라고 한참 동안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가실 날을 정해둔 것도 아닌데 하소연한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 편하고자 떼를 써본 것이다. 그럴 때도 같은 자식 입장이 되어 함께 애태우며 소소한 가정사까지 모두 들어주었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가벼운 질병은 동네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중증질환인 경우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 이 같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경증환자조차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실정이라 의사 한 명이 하루 2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해야만 한단다. 진료시간이 짧다 보니 서로 눈을 맞춰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조건인데도 새내기 의사들은 달랐다. 선배들 눈치까지 봐야 하니 오히려 더 열악한 조건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환자와 보호자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젊은 의사들을 보면 이제 한 번쯤 반성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환자는 의사의 부드러운 얼굴과 긍정적인 말 한마디로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고 환자의 마음까지 읽으려 애를 쓴다면 명의가 따로 없지 않을까 감히 주문을 해본다.

    박귀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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