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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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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사월, 꽃그늘에 서면 시(詩)가 취한다- 임성구(시조 시인)

  • 기사입력 : 2013-04-1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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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월로 가는 첫 주말을 맞아 시인 셋이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동십리벚꽃 꽃구경을 다녀왔습니다. 하동 입구를 들어서자 섬진강을 배경으로 꽃들이 내지르는 탄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심히 찌를 바라보는 낚시꾼처럼 자리 한 번 이동하지 않은 나무들이 겨울을 무사히 건너왔습니다. 봄의 출렁이는 손맛을 보고 그렇게 환하게 탄성을 지르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 감개무량함에 나의 마음은 벌써, 한 마리 꿀벌이 되어 꽃의 등을 핥고 있습니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꽃들이 간지럽다며 깔깔거리며 웃다가 한 잎 한 잎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제 꿀을 내어줍니다. 봄은 그렇게 달짝지근하게 내 심장에 북을 치며 왔습니다.

    쌍계사 벚꽃터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바람의 손이 닿을 때마다 나뭇가지는 악보를 펼치며 지휘자가 되어 상춘객의 마음을 아름답게 연주합니다. 상춘객들의 환한 미소에서 끝없는 앙코르송이 터져 나옵니다. 나는 벚꽃터널을 지나면서 아주 야릇한 시(詩) 한 편을 낚아 올려 봅니다. ‘봄이 와글와글 수다 떠는 삼월 주말/ 그짓 하는 순간순간 매화가 다녀가고/ 살구꽃 달아오른 몸이/ 벚꽃을 불러 모은다// 벌 입술 닿자마자 펑펑 터진 아우성/ 머얼건 대낮에도 별은 또 저리 빛나/ 몸 우주 뜨거울 때 이런,/ 휴대폰 자꾸 울린다’ ‘그짓’ 전문입니다. 꽃이 세상을 향해 함박웃음 터트릴 때, 내 몸과 마음도 달아올라 이렇게 붉은 문장을 납깁니다.

    다시 우리 일행은 천년고찰 구례 화엄사로 발길을 옮겨 보았습니다. 화엄사에서 우리 일행을 제일 먼저 반겨 준 것은 거대한 홍매화 한 그루였습니다. 홍매화와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적멸보궁에 들러 두 손을 모읍니다. 간절한 바람이 있어 적멸보궁과 조릿대를 사이에 두고 마음속 삼배를 올립니다. 합장하고 돌아 나오는 길 진달래도 피었습니다. 진달래 꽃잎 한 잎 따서 먹어봅니다. 어린 시절 봄날, 친구들과 마을 앞산에 올라 진달래를 따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진달래 꽃잎 한가득 따서 항아리에 넣고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술을 발효시켰습니다. 아버지 몰래 진달래술 한 모금 했다가 취해버려 혼이 나곤 했습니다. 그때는 술맛을 모르고 마신 술이었지만 화엄사에 와서 진달래를 보니, 진달래술을 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며 옛 향수에 젖습니다.

    또다시 우리 일행은 화엄사를 나오는 길목에 있는 詩의 동산에 들렀습니다. 시의 동산에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용운 시인의 ‘알 수 없어요’, 송수권 시인의 ‘산문에 기대어’,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섬진강’ 등 시비를 둘러보다 낯익은 시 이우걸 시인의 ‘모란’을 감상합니다. ‘피면 지리라/ 지면 잊으리라/ 눈감고 길어 올리는/ 그대 만장 그리움의 강/ 져서도 잊혀지지 않는/ 내 영혼의/ 자줏빛 상처’가 노란 산수유를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노고단 해발 800m부터 1000m 성삼재로 가는 길엔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았습니다. 산 아래는 이미 봄이 와 꽃이 한창인데, 이곳 성삼재에는 봄이 더디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언젠가 봄은 오겠지요.

    봄은 이렇게 하냥 뜨겁고 생기가 넘칩니다. 우리네 언 가슴도 녹여주는 봄의 꽃그늘 아래에 서면 시인의 마음에도 꽃이 펴서 詩를 취하게 합니다. 가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과격한 언어와 여러 폭행사건으로 사회가 혼탁해져 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詩로 사회를 맑게 정화시킬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작품을 많이 써서 독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싶은 열망을 더하며 봄을 마음껏 즐겨 보렵니다. 여러분도 꽃과 詩에 한번 빠져 보십시오.

    임성구(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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