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내가 죽었다 깨나도 총리나 장관이 될 수 없는 이유- 이승주(시인)

  • 기사입력 : 2013-04-05 01:00:00
  •   



  • ‘새롭다’는 말은 ‘설레다’란 말과 같다. 새로운 날, 새로운 시작, 새로운 만남은 늘 설렘을 동반한다. 설렘은 곧 어떤 기대감이다. 새로이 변화된 환경, 새로이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이 기대는 마음을 부풀게 한다. 비록 우리의 삶이 소박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늘 새로움으로, 기대감에 부푼 설레는 마음으로 일상을 맞이해야 옳지 않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이전 정부들의 말년은 대개가 길고 지루하였으므로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정부보다 국민의 행복한 삶에 대한 설렘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감동’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역시나 설렘은, 대통령의 고위 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설레는 기대감과의 어긋남을 통해서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전 박근혜 정부의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갖가지 의혹을 받아 오던 국방장관 후보자가 38일 만에 사퇴했다. 자리에 집착하다 거취의 타이밍을 놓쳐 잃을 거 잃을 대로 잃고 망신만 샀다. 그랬는데, 또 집권당 내에서조차 부정적 입장으로 기울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해외 비자금 계좌 운용 및 세금 탈루 의혹 등으로 사퇴했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이 글을 쓴다. 지금까지 새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에서 두 달 새 6명이 낙마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인사 책임자도 낯이 부끄러울 것이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다 같이 딱하고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기사가 새삼 놀라운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이런 발언은 평소의 나 같지가 않지만, 내가 비정치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고위 공직 후보자들처럼 그도 그들과 다름없이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의 일단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의 확인 정도랄까. 어느 정도 식상한 뉴스이기도 하다. 대부분이 그 당시는 그것이 관행 같은 것이었다는 말들도 하니, 결격사유가 없는 적임자를 찾기 위한 인사가 참으로 어렵다고 하는 것도 당연한 듯이 최소한의 기준이나 가치관이 무뎌진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이런 부실 인사 검증이 반복될 것인지, 검증 대상자도 그렇고 혹여 검증 담당자도 똑같은 부류는 아닌지.

    퇴고 중이던 시를 일단 마무리해 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으니 뉴스에서도 그 얘기가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어떤 깨달음 같은 소리를 중얼거린다. 이전 이명박 정권 초기 때 ‘안민가(安民歌)’를 쓰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면서, 나는 죽었다 깨나도 총리나 장관은 될 수 없겠구나 하고 넋두리인지 독백인지 이것도 시인지 그대로 이면지에 받아 적는다.

    아무래도 나는/ 총리나 장관이 될 수는 없겠다/ 헌법재판소장이나 감사원장이 될 수는 없겠다/ 세상물정도 모르면서 아내가 듣고 온 세상물정 이야기를 나무라고/ 남들 다 가는 가족 해외여행 한번 시켜준 적 없는 나/ 열 살이나 일곱 살 아들 명의로 땅 한 평 못 사고/ 돈 좀 있거나 자리 좀 높은 양반들이라면 남 다 하는/ 아들 병역면제도 못 시키고/ 검찰총장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쯤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병역비리 의혹 그 어느 한 가지 능력도 못 갖춰/ 논문 복제나 표절의 능력 그 어느 한 가지도 못 갖춰/ 대쪽과 청렴의 거짓옷을 걸쳐 입어 나라와 국민을 무단도용하고/ 캐면 캘수록 감자알처럼 딸려 나오는 위법과 변명으로/ 신망과 기대를 배신감과 서글픈 분노로 바꾸게 하는 잘난 아비의 능력도 물려받지 못해서/ 아무래도 나는 내 평생에/ 총리나 장관은 죽었다 깨나도 꿈꿀 수조차 없겠다/ 내 평생 한 자리 꿈꾼 적 없지만 꿈에라도/ 만약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새봄, 청도 대전리 은행나무를 삼고초려 모셔와/ 그의 푸른 사상을 맘껏 펼치게 할 것을 ―‘내가 죽었다 깨나도 총리나 장관이 될 수 없는 이유’

    이승주(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