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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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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41) 송창우 시인이 찾은 거제 공곶이

외딴길 걸어 닿은 生의 오지

  • 기사입력 : 2013-04-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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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곶이를 가꾼 강명식(오른쪽)·지상악 부부.
    바로 앞에 내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공곶이 몽돌 해변.

    송창우 시인

    내게는 꼭 이루어보고 싶은 꿈이 있다. 이 지상의 어디 한 곳에 1만 평의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 지금의 형편에서야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꿈을 꾸며 살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 꿈을 유포하고 산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도시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꾸어보는 공통의 꿈일 테지. 다만 돈도 없고, 자식들 교육도 걱정되고, 먹고살 길도 감감하기만 해서 그저 꿈만 꾸며 사는 것일 뿐.

    그런 대다수의 사람들에 견주면 나는 그 꿈을 이루기에 비교적 조건이 좋은 편이다. 아직 젊고 건강하니 노동력이 있고, 자식이 없으니 자식 교육 걱정 안 해도 되고, 먹고살 길 감감하기야 지금도 마찬가지니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몸집이 작으니 많이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하루에 한 끼쯤은 꽃향기로 때우는 일에도 익숙하다. 게다가 이미 도시에서 산골로 이사를 와서 별 탈 없이 잘 정착도 했으니 자신감도 충만하다. 다만 아직 1만 평을 구할 돈이 없다는 게 문제인데, 좀 더 열심히 살고, 좀 더 저축하다 보면 마침내는 기회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런 희망조차 없다면 사는 일이란 얼마나 재미없고 막막할 것인가?

    그런 거창한 꿈을 꾸고 사는 내게 올해는 유독 공곶이란 이름이 자주 전해져 왔다. 거제도에 있다는 낯선 이름의 땅. 어느 부부가 40년이 넘게 산비탈을 일구어 낙원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땅. 어떤 그대는 봄이 오면 공곶이에 수선화꽃 보러 가자고 했고, 또 어떤 그대는 공곶이에 가서 노부부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내게 공곶이란 이름을 전해준 사람들은 내가 꾸는 꿈을 알고, 내 꿈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이들이다.

    3월의 끝자락, 수선화 꽃이 한창인 날에 거제도로 향했다. 공곶이는 거제도 와현 예구마을에서 고개 하나 너머에 있다고 했다. 예구마을 선창에 차를 버리고 공곶이로 가는 산길을 걸었다. 제법 오르막이긴 해도 동백꽃이 떨어져 누워 있는 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길섶에 자란 장딸기 가지에는 벌써 흰 꽃이 피어 있고, 겨우내 잎사귀를 축 늘어뜨리고 살았을 굴거리 나무들도 잎사귀를 바짝 들어올렸다.

    공곶이는 15분쯤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고갯마루의 공동묘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은 공곶이를 일러 수선화 천국이라 했는데 천국으로 가는 길은 묘하게도 공동묘지를 지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예전에는 예구마을 사람들이 상여에 꽃을 달고 오던 길이었겠다. 고갯마루 공동묘지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다. 예구마을은 작은 어촌이지만 마을 가운데 천주교 공소가 자리 잡고 있을 만큼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많다.

    공동묘지 사이로 난 길을 지나면 드디어 공곶이의 풍경이 펼쳐진다. 공곶이의 꽃들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다다. 와현, 구조라, 학동을 지나 도장포까지 둥글게 휘어진 바다, 노자산과 가라산 줄기가 바다로 가라앉는 갈곶리 끝에 솟아오른 해금강. 그리고 이 언덕배기에 앉아 ‘배 온다’라고 소리치면 대문을 열고 나와 선창으로 나갈 듯이 가까이 앉아 있는 내도. 내도의 산자락에는 뭉게구름처럼 산벚꽃이 피어 있고, 푸른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공곶이 바닷가 몽돌밭이 하얗게 반짝인다. 공곶이란 사실 신이 빚은 자연의 풍경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나는 천천히 한 발을 공곶이에 더 들여놓는다. 발아래 툭 동백꽃이 떨어진다. 공곶이로 내려가는 길은 한 사람이 지날 만큼 조붓한 돌계단의 동백길인데 잘 자란 동백들이 터널을 이루어 낮에도 어둑어둑하다. 그래서 오히려 머리 위에 매달린 동백꽃들은 마치 붉은 전등처럼 더 빛난다. 이 동백길을 사이에 두고 노란 수선화가 피어 있다. 수선화는 산비탈을 가로지르며 층층이 만든 기다란 다랑밭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꽃들은 일제히 바다를 보며 핀다. 수선화 한 송이 한 송이 꽃의 얼굴에 눈을 맞추고 바라보면 어떤 꽃은 금잔접시에 금잔을 올려놓은 듯이 곱고, 또 어떤 꽃은 금잔접시에 은잔을 올려놓은 듯이 곱기도 하다. 그런데 일제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수선화 무리들을 한 발쯤 떨어져서 보면 어쩐지 외로운 인간들의 군상을 닮았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내가 가져다준 수선화 꽃에서 오래오래 우울을 앓아온 여인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수선화 꽃밭을 지나 공곶이 깊숙이 한 발을 더 내려서면 종려나무숲이 있다. 종려나무들은 마치 손바닥 같은 잎사귀를 매달고 바닥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우두커니 서 있다. 그들은 일생의 침묵을 서약한 수도사의 행렬을 닮았다. 아니 그들은 사랑을 잃고 그 자리에 선 채로 돌이 된 망부석을 닮았다. 아마도 이곳이 단 한 번의 사랑과 긴긴 기다림을 그린 영화 <종려나무숲>의 무대가 된 것은 아마도 그런 까닭이리라.

    동백꽃의 터널은 333개의 돌계단에서 끝이 난다. 이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오른 쪽으로 난 길은 난대림의 숲을 지나 바다로 가고, 왼쪽으로 난 길은 돌담장을 따라 수선화가 핀 외딴집으로 간다. 외딴집에는 팔순의 노부부와 말 못하는 중년의 사내 하나가 산다.

    바닷바람을 막느라 돌담장을 높이 쌓아올린 외딴집에는 열 평 남짓 작은 마당을 물고 안채와 슬레이트 지붕에 낡은 황토벽을 한 아래채가 있다. 아래채의 처마 아래엔 1969년 처음 이 땅에 들어와 3만여 평의 산자락을 일구고 나무와 꽃들을 심은 강명식(83), 지상악(79) 부부의 고집스런 삶의 흔적들이 유물처럼 걸려 있다.

    따뜻한 봄날 오후 나는 외딴집 마당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말 못하는 사내와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와 잔잔한 햇살이나 쬐며 잠시 앉아 놀았다. 진주 문산이 고향이라는 할아버지는 여든셋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건했고, 고개 너머 예구가 고향이라는 할머니는 공곶이에 한창 핀 조팝나무꽃처럼이나 다정다감했다. 말 못하는 사내는 내게 참으로 호의적이어서 사랑채의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을 보여주고, 항아리 속에 담아놓은, 아직도 노란빛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지난가을의 모과들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강아지는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떠돌아다녀 성은 노씨에 숙자라 불렀는데, 함께 정붙이고 살게 되면서 이제는 외손녀 딸의 인형 이름을 따서 꽁순이라 부른다 했다.

    나는 공곶이에 오면서 꽃보다도 산비탈을 개간한 두 분의 연장이 가장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안채보다 지게와 삽과 낫과 곡괭이들이 걸린 아래채에 먼저 눈이 갔는데, 그 연장 속에는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고단한 삶의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연장 얘기를 꺼내 보려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가리키신다. 울퉁불퉁 굵은 핏줄 몇 가닥이 도드라진 오래된 손.

    요즘 공곶이에 순례길을 만드느라 바쁘다는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다시 일터로 나가시고 말 못 하는 사내는 꽁순이와 함께 수선화밭으로 가고, 나는 파도가 한가로이 몽돌을 굴리고 있는 공고지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아서 왔다. 그리고 산골집 밥상머리에 한참을 앉았다가 서두를 다시 쓴다.

    공곶이로 가는 길은 외딴길이다. 공곶이로 가는 길은 보통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과는 다른 길이다. 일상의 길이 지겨울 때마다 가끔 꿈꾸는 길이긴 해도,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래서 세상에는 잘 없는 길이다. 공곶이에 가자면 비탈진 고갯길을 한 40년 쯤 올라야 하고, 비탈진 내리막길을 또 한 40년 쯤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 나는 비록 공곶이를 다녀왔어도 공곶이를 다녀왔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곶이는 몇십 분 발품을 팔아야 닿는 지상의 오지가 아니라, 몇십 년의 외로움과 고난을 견뎌야만 닿을 수 있는 생의 오지이기 때문이다.

    글·사진=송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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