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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111) 발상의 전환으로 논리 찾기

반값등록금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

  • 기사입력 : 2013-03-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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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년 전 어느 대학의 수시모집 자기소개서에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그 이유를 쓰시오”라는 문항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대입 수험생들이 논리 있게 작성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만한 질문이죠. 만약 대입 논술시험이나 면접 현장에서 이런 질문을 접한다면 아주 당황스러울 겁니다. 어떤 식으로 답하면 좋을까요? 오늘 논술탐험에서는 발상의 전환으로 논리를 찾는 방법을 알아볼까 합니다.

    글짱: 신문을 보며 틈틈이 논술 공부를 하고 있는 고3 학생입니다. 대입 자기소개서에도 논술형 질문이 나올 정도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네요.

    글샘: 대입 심사위원들은 수험생들에게 전문가 수준의 글을 요구하지는 않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 정도를 평가하거든. 오늘은 ‘대학 반값등록금’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싶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반값등록금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논리로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까?

    글짱: 반값등록금이 왜 문제예요? 나라에서 반값등록금 제도를 시행한다면 환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글샘: 대부분 학생이나 학부모는 당연히 찬성하겠지. 내 질문의 의도는, 반값등록금의 후유증을 생각해 보라는 거지. 발상을 전환함으로써 어떤 점을 비판하고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를 묻는 거야.

    글짱: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조세부담이 커지는 문제점을 지적하면 어떨까요?

    글샘: 그런 쪽으로 접근해도 되겠지. 하지만 반값등록금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제도라는 논지로 논술을 써 볼 수도 있을 거야. 대입 수험생인 자신만 염두에 둔다면, 대학 진학을 못하고 취업 현장으로 진출하는 친구들의 고충은 외면하는 게 되겠지. 국민의 세금으로 대학 진학생에만 혜택을 주는 게 과연 공정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글짱: 그 문제는 정부에서 해결해야죠. 반값 등록금은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걸 정도였으니, 새 정부에서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기대하거든요.

    글샘: 여기서는 반값등록금 예산 마련 방안은 논외로 하고, 대학 지상주의가 계속됨으로써 생기는 폐단을 짚어 보자꾸나. 정부에서 등록금을 절반 지원해주면 대학진학 수요는 더 늘어날 거야. 취업 쪽으로 진로를 모색하던 고3 학생들도 대학 진학 쪽으로 눈을 돌릴 테고, 반값등록금 예산은 예상외로 많아져야 할 거야. 그러면 특성화고 육성 등 고졸채용 장려와 중소기업 육성 정책은 힘을 잃게 되겠지.

    글짱: 지금도 대기업에선 자녀 대학등록금을 지원해주고 있잖아요. 대부분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겐 그런 혜택이 없기 때문에 반값등록금이 더욱 절실하잖아요.

    글샘: 그러니까 반값등록금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다른 방안을 찾자는 게 역발상의 논리야. 반값등록금 예산으로 중소기업 근로자 또는 그 자녀에게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대안은 어떻겠니?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은 일하면서 야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 등을 통해 대학 공부의 꿈을 이룰 수 있고, 중소기업에서 오래 일한 근로자는 자녀의 대학등록금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제도가 될 수 있겠지.

    글짱: 맞는 말이네요.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의 길을 택한 청년들이 정부의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니까요.

    글샘: 물론 이 대안도 허점은 있어. 중소기업이 아닌 음식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녀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이 뒤따를 거야. 중소기업 종사자 자녀에 준하는 세금 감면 혜택 등을 마련해 형평성을 갖추는 게 정부의 역할이겠지.

    글짱: 어떤 방식이든 정부에서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대학생이 생기니까 대졸 실업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겠는데요.

    글샘: 대학생들에게 지원되는 한 해 수백만 원의 돈은 졸업 후 취업만 제대로 하면 몇 년 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금액이잖아. 결국 말로만 대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얘기하지 말고, 자녀 대학등록금 정도는 낼 수 있도록 중소기업을 지원해 주고 그곳에 취업할 수 있는 매력을 느끼게끔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한다면, 대기업 자녀들의 대학등록금 혜택을 없애는 게 먼저일지도 몰라.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겐 조금 미안한 논리지만, 지금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 대학등록금 면에서만큼은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좋은 여건이라면 우리나라 취업문화는 바뀔 수 있겠지.

    글짱: 등록금 부담 때문에 고민하는 서민이 혜택을 받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군요.

    글샘: 수험생의 논술 글로 완벽한 논리를 펼치기는 힘들겠지만, 정치권에서 생각하는 반값등록금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강하게 주장할 수는 있을 거야. 공정사회란 획일적인 잣대로 지원 비율을 정하는 게 아니라, 있는 사람이 조금 손해를 보고, 없는 사람이 조금 더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게 아닐까. 또한 정부 지원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은 나중에 자립기반을 갖추면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을 위해 베풀 수 있는 사회구조가 정착되면 더욱 좋겠지. 물론 정책 전문가들이 치밀한 점검과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반값등록금 대책을 마련한다면,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고 비전이 있는 나라로 나아가겠지. 혹시라도 대입 논술이나 면접 때 반값등록금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 오늘 얘기 나눈 ‘발상의 전환’을 떠올려 네 생각을 논리 있게 표현해 보렴.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내자꾸나.

    편집부장 s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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