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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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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피해자, 가해자가 없는 층간소음 문제- 김하경(시인)

  • 기사입력 : 2013-03-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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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층간소음으로 11년간 고통을 받아 온 한 남성이 이웃집에 방화를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당시 층간소음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로 환청까지 들렸다고 하니, 그가 한 행동은 옳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 심정은 이해가 된다.

    우리는 옛날부터 이웃을 사촌이라고 덧붙여 불렀다. ‘이웃사촌’이란 말에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배어 있다. 비록 남남끼리라도 서로 이웃하여 다정하게 지내면 사촌과 같이 가깝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거나 서로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다 보니 층간소음에 따른 갈등이 심각해지고 끝내는 방화나 흉기를 휘두르는 일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 우리는 층간소음을 겪었던 적이 있었던가. 층간소음 문제는 아파트가 국민의 65% 이상이 쓰는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윗집, 아랫집에 누군가와 살게 되면서 서로가 층간소음을 주는 사람이, 그리고 받는 사람이 되었다. 즉, 이웃 간에 서로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가 된 셈이다.

    층간소음을 당하는 사람은 “좀 조용히 해주면 되지”라며 표현하고, 주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거기까지 들립니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렇게 두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몇 년 전 일이다. 둘째 딸아이가 고3이라 예민한 시기였다. 밤만 되면 영화소리와 아이들 소리가 옆집에서 들린다며 투덜거렸다. 그런 딸아이를 보고 “조금만 참아보라”며 다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스트레스를 받아 못 견뎌 하는 딸아이를 보자 ‘안 되겠다’ 싶어 옆집을 찾아갔다. 신혼부부가 사는 옆집에 “조금만 조용히 영화를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부탁했더니 대답은 “제일 작은 소리로 영화를 보는 건데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였다.

    그들도 일을 마치고 오는 저녁시간에 유일한 취미가 홈시어터로 영화를 보는 건데 눈치를 보며 감상했을 그 모습을 상상하니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오죽했을까. 그들 나름에서도 최선을 다한 거였지만, 딸아이의 입장에서도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닌가.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그저 ‘서로가 참고 조금만 배려해서 살자’라는 말밖에.

    영화를 보는 것마저 눈치를 봐야 하는 신혼부부가 피해자인지, 소음으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 고3 딸이 피해자인지. 층간소음이 갖는 아이러니는 내가 내 집에서 하는 행동을 이웃의 눈치 봐야 하며 그 행동에 본의 아닌 정신적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누가 피해자이며 가해자인지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서로 함께 살고 있는 주거 공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든 소리를 막을 순 없다.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벽의 두께를 더 두껍게 하고 성능 기준, 표준바닥 기준을 의무적으로 지키도록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 개정법이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도움을 줄지 마냥 기대하기만은 어렵다.

    최근 대구에서 기초자치단체의 공동주택 주민이 스스로 ‘층간소음 방지 규정’을 제시하고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층간소음을 자제하는 시간과 대상을 정하여 생활수칙을 정한 뒤 서로의 암묵적인 노력으로 이를 지키고 있으며, 이렇게 자율적으로 만든 층간소음 방지 규정은 이와 관련된 민원을 획기적으로 줄여 분쟁을 이웃 간의 배려와 소통으로 대다수 해결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층간소음. 그것은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과 같다. 고치기 어려운 것일 뿐이지 못 고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좀 더 강화된 법적 규제 하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배려의식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니 작은 아량도 베풀어 봄이 어떨까. ‘나도 누군가에게 주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나도 받을 수 있다’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김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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