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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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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호모 루덴스의 실종- 박은주(시인)

  • 기사입력 : 2013-02-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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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사가인 요한 호이징하는 그의 저술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했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음악이나 춤, 스포츠, 제의적 의식 등 인간 생활과 관련되는 수많은 것들이 놀이 속에서 탄생됐고 그리하여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기며 놀이를 떠나는 법이 전혀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설 연휴 기간에 목도한, 놀이와 관련한 풍경 하나가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시댁과 친정 양가의 조카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내 눈에는 결코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 ‘스마트폰에 임하는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내 아이를 포함, 양가의 조카들을 합치면 스무 명 정도로 유치원생부터 초, 중, 고,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그 분포도가 사뭇 다양하다. 한쪽은 광역시에서, 또 한쪽은 면 소재지 시골에서 설을 쇠었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이 아이들이 마치 사전 모의라도 한 듯 중학생 이상이면 모두 요즘 대세인 휴대전화기 하나씩을 꿰차고 소파나 벽에 등을 붙인 채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손끝으로 불러내는 세계에 몰두한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여 준 것은 눈도 얼굴도 아닌 동그란 정수리였는데 내 눈에는 수굿한 자세의 그들이 흡사 최종병기 스마트폰을 든 ‘전사들’ 같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과 그간의 소식을 묻거나 살가운 감정을 공유하기보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듯 전화기 속에다 오래 코를 박았다. 구닥다리 2G폰을 쓰는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볼거리, 재미거리, 위안거리가 그 속에 가득한 모양이었다. 마치 아무도 모르게 지어놓은 외딴 성으로 ‘혼자놀이’를 하러 간 듯이 보였다. 온 가족이 만나는 명절에 정색하고 나무랄 수도 없어 지나는 말로 걱정스럽다는 의중을 비추는 정도에 그쳤지만 속마음은 꽤나 불편했다.

    이 풍경이 비단 내 가족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몰입 정도를 볼 때 놀이의 기본 요소인 재미의 충족 정도가 얼마나 큰지도 짐작은 됐다. 언론을 통해 그 중독성을 익히 들어온 터이고 내 아이에게서도 더러 목격되던 일이건만 주변 사람에 대한 무심과 기계에 대한 맹목을, 그것도 단체로 보여주는 장면 앞에서는 결코 마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달리 생각하면 건강하게 놀 곳도 마땅히 없고 마음 편히 놀게 하지도 않는 현실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 없이 드나들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놀이의 문제점은 사람이 동반되지 않는, 자폐적 경향이 짙은 놀이인 데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깊이 중독된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일수록 또래나 가족과의 정서적 상호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경쟁과 일등주의의 벼랑으로 내모는 데다 아이들의 현재도 미래도 부모가 주인인 듯 과다 관여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막힌 기를 풀 대안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정신적 성장 속도보다 먼저 부모나 사회와의 심리적 결별을 감행할 것이다.

    성장기의 다양한 놀이 경험은 ‘무의식적인 자아교육’이 되어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의 2세들에게도 지대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다양하면서도 정서적 신체적 성장을 돕는 놀이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어른들과 이 사회의 몫이다.

    호이징하의 말대로 모든 문명이나 문화의 기초가 놀이라면 그것은 인간에 의해 시작돼 인간을 위해 진전되고 변화해 왔을 것이다.

    어린 조카들이 청소년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었을 때 사람이 만든 이기(利器)에 의해 사람이 배제되지 않는, 사람과 놀이하는 사회를 더 나은 문명세계라 여기는 세상이 되어 있기를 소망한다.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박은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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