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작가칼럼] 잠수함 속의 토끼-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3-02-01 01:00:00
  •   



  •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했던 이는 ‘25시’의 작가 콘스탄트 비루질 게오르규(Constant Virgil Gheorghiu)다. 1916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게오르규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의 승무원으로 참전했다. 그때 그는 잠수함 가장 밑 부분에 토끼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당시, 토끼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잠수함에서 일종의 ‘경고등’ 역할을 했던 것이다. 공기에 민감한 토끼는 공기가 탁해지는 순간을 인간보다 빨리 감지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게오르규의 이 말은, 시인이란 잠수함 속의 그 토끼처럼 미래의 위기를 특유의 예민한 센서를 통해 감지하고, 현실세계를 향해 경고신호를 보내는 존재여야 한다는 의미다.

    18대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새로운 정치를 해보겠다는 당선자 측 사람들의 바쁜 행보가 연일 뉴스를 채우고 있다. 모종의 활기와 기대가 새해 벽두를 채우는 모습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쉽고 안타까운 소식도 섞여서 들려온다. 지난 대선 때 선거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몇몇 시인과 소설가들이 조사 중이거나 검찰의 출석요구를 받았거나 경찰에 소환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백가흠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투표 독려를 한 일과 관련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가 접수돼 조사에 들어간 상태고, 소설가 공지영 씨는 국정원 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고발돼 경찰에 출두하라는 출석요구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소설가 손홍규 씨는 정권교체 바람을 담은 신문광고를 실었다는 이유로 지난 18일 경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들이 누군가. 이 사회의 토끼들이 아닌가. 그들은 작가 특유의 예민한 센서로 우리 정치가 많은 부분에서 크게 후퇴하고 있다고 느꼈고, 그걸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지켜보는 다른 작가들도 “문학은 소외된 자의 절망에 공감하려는 노력인 동시에 버려진 자의 고통과 동행하려는 의지”라며 성명서를 내고, 이런 일련의 사태가 새 정부의 문인 길들이기라 보고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이 사안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지난 1월 17일 경남도는 2013년도 경남지역 대표축제를 선정했다. 지난해 도내 전역에서 열린 80여개 축제 가운데 시장ㆍ군수가 추천한 18개 축제를 시(市)단위, 군(郡)단위로 나누어 심사한 결과 시단위에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가, 군단위에서는 하동의 토지문학제가 각각 경남의 대표축제로 선정됐다.

    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 예술제로 시작한 개천예술제가 경남의 대표축제가 된 것은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하동의 토지문학제가 대표축제로 선정된 것은 의외다. 아직도 지역 문학제는 대중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에는 그 범위와 층위가 다른 축제들에 비해 매우 한정된 것으로 바깥에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문학제가 경남의 대표축제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는 지역문학에 대한 관심과 긍지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문학을 바라보는 문학 바깥의 시선이 많이 개방되었다는 것이다. 토지문학제가 대표축제로 선정된 것은 이제 문학제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는 거다. 문학이 축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문학이 진정한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해주자. 작가들이 그들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해주자. ‘토끼들의 경고’에 처벌로 대응할 게 아니라 먼저 귀를 기울여주자. 새 당선자가 주창하는 진정한 화해와 통합이란, 나를 옹호하는 자가 아니라 비판하는 자를 기꺼이 껴안을 때 시작되는 것이다.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