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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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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4) 창원 삼포 가는 길에서 보는 진해만 낙조

해가 떨어지면 열리는 붉은 사잇길
수필과 가요의 배경이 된
조용한 어촌마을 삼포

  • 기사입력 : 2013-01-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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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진해구 명동 삼포 가는 길에서 바라본 음지도 해양공원 일대의 해거름 풍경. 왼쪽에 우뚝 솟은 건축물은 오는 4월 진해군항제 개막에 맞춰 문을 열 해양솔라파크타워이다.
    해양솔라파크타워에서 바라본 일몰. 지상 126m의 전망대에서는 진해만에 펼쳐진 웅도, 소고도, 초리도, 잠도, 실리도, 거제도 등 많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8월 어느 여름날, 여행을 떠나 긴 산길을 따라 거닐던 청년 작가 이혜민은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드넓은 바다를 향해 옹기종기 어깨를 기대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만났다.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함이 이혜민의 마음 깊숙이 차지해 버린 그곳은 바로 삼포마을이었다. 하늘과 바다가 닿는 외촌 삼포, 푸른 뒷동산 위론 유년의 뭉개구름이 끝없이 펼쳐진 삼포…. 이러한 풍광들은 그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이곳을 동경하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였다.’(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중에서)

    지금은 인근에 거대 조선소가 들어오고 해양공원이 조성되는 등 상전벽해가 됐지만,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진해만이 내려다보이는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삼포 언덕에는 소담스런 돌담과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50여 호 초가들이 평화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청년 작가 이혜민은 수필 ‘내 마음의 고향 삼포’에서 당시 이 마을의 서정을 이렇게 읊었다.

    “어릴 적 강한 동경의 향수 때문인지 내가 우연히 여행길에 찾은 어촌마을 삼포는 나에게 동경의 그리움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마을이었던 것이다. 비탈진 산길을 돌아 한참을 가노라면….’

    이처럼 진해 삼포는 어머니 자궁 속 같은 평화로움과 포근함이 스며 있는 어촌마을이었다.

    1970~80년대 국민가요로 널리 불렸던 ‘삼포로 가는 길’은 바로 이 마을을 배경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 보면 한 발 두 발 한숨만 나오네, 아아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하략)

    이런 아련한 서정이 깃든 삼포 가는 길에서 관조하는 낙조(落照)는 천하장관이요, 웅장한 대서사라 할 만했다.

    송곳바람이 살갗을 파고들 듯 양볼을 스치던 지난 19일 금요일 오후. 삼포 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진해만은 습기마저 겨울 냉기에 먹혀 버린 탓인지 시야가 확 트였다. 동쪽으로 부산진해신항, 남쪽으로 거가대교로 연결된 부산 가덕도와 거제도, 서쪽으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난포만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눈에 꽂힌다. 날씨가 더 좋으면 가덕도 우측 끝자락 너머로 74㎞ 거리에 있는 대마도도 어렴풋이 보인다고 한다.

    오후 5시 30분에 가까워지자 하루를 치열하게 불태운 태양이 발그스레 피로감을 보이면서 휴식을 위해 대양 속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어 붉은색 긴 꼬리를 드리우고 진해만에 낙조가 깔리면서, 고요한 바다는 마치 호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늑해졌다. 조업을 마친 작은 어선들이 항구로 속속 접안하면서 그려내는 긴꼬리투구새우 꼬리를 닮은 기다란 포말과 파문이 낙조와 어우러지면서 항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풍광을 연출해낸다.

    퇴역한 해군 구축함과 잠수함 등이 전시된 음지도 해양공원 좌측 언덕배기에는 하늘로 비상할 듯 우주선을 닮은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눈길을 확 잡아당긴다.

    통합창원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세워지고 있는 지상 136m 건축물로 태양광 발전을 하는 해양솔라파크 타워다. 오는 4월 진해군항제 개막에 맞춰 일반인에게 개장될 예정으로 주변 경관 정비가 한창이다. 지상 126m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원형전망대가 있어 낙조를 감상하기에는 제격이다. 한 번에 7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시공사 직원의 협조를 받아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후 5시 40분께 해양솔라파크타워 원형전망대에 오르니, 낙조는 그야말로 절정에 이른다.

    해발 200여m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진해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고요한 바다와 붉은 노을에 감싸인 크고 작은 섬들은 자연이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인가 싶더니 곧 몽환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순간 ‘누가 지중해를 찬탄하는가. 음지도에서 관조하는 내 고향 진해만의 낙조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라는 독백이 저절로 나온다.

    소쿠리를 엎어 놓은 듯한 소쿠리섬과 60여 호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도, 섬 전체가 소나무 숲으로 이뤄진 초리도, 음지도, 웅도, 지리도 등이 마치 어릴 적 마을 앞 냇가에 놓여 있던 징검다리로 착각하게 할 정도로 손바닥만 하다. 특히 300m 거리에 서로 인접한 소쿠리섬과 웅도는 한 달에 두 번씩 바닷길이 열리면서 ‘모세의 기적’이 연출된다고 한다.

    섬을 뒤덮은 소나무들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명필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지에서 그렸다는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들을 연상시킨다. 비쩍 말랐지만 푸름을 잃지 않아 절개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문득 추사가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수제자 이상적(1804~1865)에게 세한도를 그려주면서 써 준 발문(拔文)이 귓전을 때린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이 유배돼 힘을 잃었음에도 의절하지 않는 제자에게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진해만 낙조를 감상하면서 추사가 떠오르다니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태양이 바닷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오후 6시 20분 이후에는 수평선 좌우로 둥글게 붉은 노을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또 한 번의 장관이 연출된다.

    다시 삼포 가는 길 언덕으로 이동해 명동과 음지도를 잇는 다리, 해양솔라파크 타워를 관조하니 또 다른 아름다움에 “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인공 건축물과 자연미가 낙조와 어우러지면서 절묘한 조화를 빚어냈기 때문이다.

    아쉬웠던 점은, 이렇게 아름다운 진해만 낙조를 맘껏 즐길 수 있는 망루가 없다는 점이다. 창원시가 차제에 삼포마을 인근 야산에 낙조 전망대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창원시는 2016년까지 명동 일원 육지부와 6개 섬을 연계하는 ‘꿈꾸는 섬’ 해상유원지를 조성할 계획이어서, 이 일대는 또 한 번 상전벽해된다.

    시는 리조트와 유스호스텔, 모래체험장, 등대전망대, 산책로, 쉼터, 해안데크 등을 조성해 국민쉼터로 거듭나게 할 계획이다. 음지도와 데크로드로 연결된 우도에는 연말까지 해수욕장도 조성될 예정이다.

    삼포 가는 길은 진해구 속천항을 기점으로 중앙시장~행암~STX중공업~명동~웅천동으로 다니는 303번이나 306번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자가용으로 가자면 창원에서 안민터널을 지나 부산 방면 국도를 타고 10분여 가다가 명동 STX조선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주변 포구에는 횟집도 많아 식도락은 덤이다.

    글= 이상목 기자 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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