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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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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3) 주남저수지 철새

하늘과 물위에 그리는 철새들의 풍경화
4km 둑길 따라걸으면 가까이서 멀리서 철새를 만날 수 있다

  • 기사입력 : 2013-01-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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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주남저수지 둑길 위로 청둥오리떼가 날아오르고 있다.
    재두루미들이 해가 진 후 잠을 자기 위해 주남저수지에 모여 있다. 재두루미는 일출을 전후해 낙곡이나 풀뿌리 등을 먹기 위해 논으로 날아간다.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 제203호로 전 세계에 약 5500~6500여 마리만 생존해 있는 국제보호조이다.


    한국의 습지들은 시베리아·몽골고원 등의 내륙과 일본, 동남아 등 해양을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매우 중요한 월동지, 중간 기착지, 번식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주남저수지는 중북부 지역에 비해 결빙기가 짧아 조류 월동에 유리해 1980년대까지 동아시아 최대의 겨울철새 도래지로 명성을 날렸다.

    지금은 동읍과 대산면의 재배작물 변화와 비닐하우스 증가로 먹이공급처가 줄어들면서 과거에 비해 도래하는 철새의 개체수가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해마다 10월부터 노랑부리저어새, 재두루미, 큰고니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35종 3500여 마리의 겨울철새가 찾아온다.

    주남저수지의 매력은 적은 노력으로 많은 철새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4㎞ 남짓한 둑길을 따라 걸으면서 철새를 감상할 수 있다. 힘들게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곳곳에 비치된 망원경으로 철새들을 위협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다.

    람사르문화관 앞에 설치된 나무데크를 따라 주남저수지 제방 위로 올라갔다. 탁 트인 광활한 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저수지 대부분이 꽁꽁 얼어 얼음으로 덮여 있다. 주남저수지는 보통 1월께 결빙됐다가 날씨가 풀리면 해빙되기를 반복하는데, 올해는 한파가 기승을 부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계속 얼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여러 종류의 철새가 보인다. 탐조대 쪽으로 좀 더 걸어가 살펴보니 천연기념물 제201-2호인 큰고니와 청둥오리다.

    얼음 위에 앉은 10여 마리의 큰고니들은 머리를 몸 속 깊숙이 집어넣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동행한 생태가이드가 자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조(成鳥)는 온몸이 흰색이고, 어린새는 갈색을 띠고 있다. 부리는 끝이 검은색이고 기부는 노란색을 띠는데, 다른 고니류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다.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400마리가량의 청둥오리떼가 얼음 위에서 쉬고 있거나 한가로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헤엄치는 놈들은 물위를 미끄러지듯 돌아다닌다.

    수컷은 머리가 금속성을 띤 녹색이며, 가슴은 붉은색, 몸깃은 밝은 회색이다. 암컷은 황갈색의 얼룩무늬가 있다. 암수 모두 부리는 황색이고 날개에 자줏빛 청색이 도는 무늬가 있다.

    저수지 대부분이 결빙돼 있는데 청둥오리떼가 모여 있는 곳만 얼지 않았다. 청둥오리들이 계속해서 활동하기 때문이란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던 생태가이드가 청둥오리떼 사이에서 고방오리를 발견했다며 보라고 한다. 생태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망원경으로 보니 과연 청둥오리와 다른 모습의 고방오리 몇 마리가 관찰된다. 수컷의 머리는 갈색이고 목 이하의 배 쪽은 흰색이며 등에는 흑백의 무늬가 있다. 암컷은 갈색에 검은색 무늬가 있다.

    주남저수지 제방 너머 백양마을 앞 농경지의 무논(물이 늘 차 있는 논)에도 큰고니 20여 마리가 꼼짝않고 앉아 있다. 며칠 전 한 단체에서 철새 먹이주기 행사로 고구마를 대량으로 뿌린 이후 저수지에 있던 큰고니들이 농경지 쪽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창원시는 결빙으로 먹이 부족에 시달리는 철새들을 위해 매일 오전 9시 30분께 농경지에 볍씨 120㎏을 뿌려주고 있다. 이날도 조수감시원들이 모터 달린 분사기를 메고 농경지로 들어가려 하자 큰고니들이 나팔소리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경계하다가 굉음과 함께 볍씨 분사가 시작되자 ‘과안 과안’ 하는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개체수는 많지 않지만 큰고니 떼가 무리 지어 날아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런데 한 마리가 날지 못한 채 저수지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아마도 날개를 다친 모양이다. 생태가이드가 조수감시원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구조를 부탁했다. 결국 이 큰고니는 부산에서 온 생태교실 강사에게 구조돼 야생동물보존협회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먹이를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수지에 있던 청둥오리들이 볍씨를 주워 먹으러 제방을 지나 농경지로 날아들었다. 탐조객들의 머리 위로 비행하는 청둥오리떼의 모습이 장관이다. 어디서 이런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을까.

    탐조대에 올라가 조수감시원에게 현재 주남저수지에서 월동하고 있는 철새 현황을 물었다. 큰기러기 300여 마리, 쇠기러기 1000여 마리, 큰고니 600여 마리, 청둥오리·넓적부리·고방오리·쇠오리·흰죽지 등 오리류 1000여 마리, 재두루미 200여 마리 등이 월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개체수는 적지만 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종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현재 개체수가 가장 많은 쇠기러기는 기러기보다 몸집이 작고 이마가 흰색이어서 구별하기가 쉽다. 부리는 노란색이고 배에는 검은색 무늬가 불규칙하게 나 있다.

    주남저수지를 찾는 멸종위기종 중에서 큰고니 다음으로 많은 재두루미는 해질 무렵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날갯짓을 크게 하며 목을 쭉 뻗은 채 비행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주남저수지 철새들의 종류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지만 주남저수지를 유명하게 만든 주인공인 가창오리들이 자취를 감춰 탐조객과 조류전문가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주남저수지가 철새도래지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가 도래해 월동하면서부터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한꺼번에 군무를 벌일 때에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휘젓는 것처럼 장관을 연출했다. 악마의 혼령이 춤추는 듯한 해질녘의 장관은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에서 유일하게 소개된 국내 장면이다.

    가창오리는 1980년대에 비해 개체수가 크게 줄기는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5만~6만 마리가 날아왔다.

    하지만 인근 지역의 도시화와 비닐하우스 증가로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올해의 경우 10월께 선발대 500~600마리가 관찰됐으나 곧 사라졌다.

    가창오리는 찾아오지 않지만 주남저수지는 여전히 다양한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넉넉한 보금자리다. 이곳을 찾는 철새들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글= 양영석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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