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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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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합천 가야산 소리길

경남의 길을 걷다 (34) 합천 가야산 소리길
가야산 옆에 끼고 홍류동 계곡 발아래 두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벗하며 더디 걷는 길

  • 기사입력 : 2011-10-0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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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탐방객이 홍류동 계곡을 가로질러 고운 최치원 선생이 갓과 신발만 남겨 놓고 신선이 됐다는 전설이 담긴 농산정으로 가는 농산교를 건너고 있다.
    소리길 입구.
    가야산 소리길의 명소인 낙화담을 찾은 탐방객들이 빼어난 풍광을 감상하고 있다.
    탐방객들이 길상암을 지나 낙화담으로 향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는 길상암.


    최치원 선생이 갓과 신발만 남겨둔 채 신선이 되어 홀연이 떠났다는 전설이 깃든 곳, 합천 가야산 홍류동 계곡. 지난달 개막된 ‘2011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에 맞춰 7개의 다리와 500m의 데크로 꾸며진 6㎞의 저지대 수평 탐방로로 단장돼 세상에 공개됐다. 멀찌감치 도로에 서서 까치발로 몰래 숨죽이며 봐야 했던 홍류동의 비경을 온몸으로 감상할 수 있는 문이 별안간 활짝 열린 것이다.

    ▲귀를 활짝 열고 걷자

    길의 이름은 ‘가야산 소리길’.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이름도 예쁘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걷는 길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이름만 들어도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걸어야 할 길 같다. 실제로 소리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가 귓가에서 한시도 떠날 줄을 모른다. 특히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는 길을 걷는 내내 구간에 따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탐방객들 곁을 지킨다. 계곡물은 갈수기인 요즘에도 몇몇 지점에서는 바로 옆사람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흐른다. 아무리 가문 때에도 마르는 법이 없고, 여름철 소나기라도 온 뒤에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소리를 만든다고 하니 다음해 그 어마어마한 물줄기가 만들어낼 풍광이 기대된다. 소리길은 ‘극락으로 가는 길’이라는 불교적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과연 법보종찰 해인사 가까이에 조성된 길답다.

    ▲연두에 물든 들길

    길의 시작은 대장경문화축전 행사장과 국립공원사무소 등 여러 시설이 밀집해 있는 합천군 가야면 황산 1구 마을부터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길의 입구를 잘 닦아 놓았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쭉 걸으면 되기에 굳이 어떤 길을 가야 한다는 지침은 없다. 문화축전 행사장을 둘러본 후 소리길을 걸어 해인사로 올라가는 것도 좋은 가을철 나들이가 될 듯하다. 원점회귀형 길이 아니므로 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따라서 자동차를 가져갔다면 축전행사장 주차장에 세워두고 걸어갔다 와도 좋고, 거꾸로 해인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홍류동 계곡물의 흐름에 순행해 축전행사장 쪽으로 내려와도 된다. 길의 입구부터 왼편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오른편에는 가야산을 굽이쳐 온 홍류동 계곡물이 얌전하게 흐른다. 소리길의 시작부터 가야산 국립공원 소리길탐방지원센터가 있는 2.2㎞ 구간은 말 그대로 들길이다. 연둣빛에서 갈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논이 산능선을 따라 펼쳐져 있다. 숲이 시작되는 가야산국립공원 소리길탐방지원센터가 있는 곳까지는 꼼짝없이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걸어야 하므로 모자를 꼭 준비해 가기를 권한다.

    ▲홍류동 계곡을 발밑에 두고

    소리길에서는 최치원 선생처럼 홍류동 계곡을 발밑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몇 개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첫 번째 다리가 무릉교, 칠성대에서 만나는 교량2, 교량3, 홍류문에 들어가는 교량4, 농산정으로 가는 농산교, 길상암에서 만나는 명진교, 낙화담 근처의 교량5, 소리길 구간의 마지막 다리 교량6, 그리고 하나를 더하자면 해인사성보박물관 바로 아래에 영산교까지 모두 9개의 다리를 건너게 된다. 특히 이 중에서도 농산교와 교량5가 주목할 만한 다리다. 최치원 선생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 농산정(籠山亭)이라는 정자로 건너갈 수 있는 농산교. 최치원 선생이 바둑과 차를 벗하며 노년의 삶을 영위했던 곳으로 ‘세속의 시비소리 막으려 흐르는 물로 산을 감싸네’라는 시구에서 유래했다. 농산정의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농산정에 앉아 물소리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농산교 아래를 곤두박질치는 푸른 계곡물과 큼지막한 기암괴석들이 드리운 아름다운 음영을 굽어보는 맛이 일품이다. 교량5는 사람들이 걸으면 저절로 움직이는 특수공법으로 지은 다리로 일정 인원의 힘이 가해지면 흔들흔들, 스스로 그 율동을 시작한다. 마치 거대한 흔들의자 위에 앉은 듯한 기분이 든다. 


    합천 가야산 소리길은 홍류동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탐방객이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다.
    탐방객들이 소나무 군락지를 걷고 있다.


    ▲소리길의 하이라이트, 길상암과 낙화담

    가야산에는 해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15개의 암자가 들어서 있다. 소리길에서도 어김없이 암자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1㎞ 구간을 남겨 둔 지점쯤에 예리한 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길상암이라는 암자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최근 소리길 개통과 함께 계단을 깨끗하게 정비해 암자에 오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길상암에는 스리랑카에서 들여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이 있어 보살들의 기도처로 이름이 높다. 길상암 근처에는 낙화담이라는 아름다운 소(沼)가 다소곳이 숨어 있다. 느닷없이 제주도의 천제연 폭포를 떠오르게 할 만큼 청아한 물이 에메랄드 빛을 띠며 빛난다. 얼마나 맑고 고운지 진주에서 해인사로 나들이를 왔던 기생들이 물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에 넋을 잃어 꽃잎이 떨어지듯 물에 차례차례 빠졌다는 전설이 일대의 마을주민들에게 전해져 온다고 한다.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키는 곳

    홍류동 계곡은 천년 세월의 무게가 녹아 있는 합천 8경 중 3경인 동시에 가야산 19경 가운데 16경까지를 모두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1918년 해인사 주지였던 이회광(李晦光) 화상의 부탁을 받은 예운(猊雲) 최동식(崔東植)선생이 홍류동과 가야산의 19명소를 정하고 그 명소마다 시구를 붙인 연작시 형태의 작품을 남겼다. 소리길 중간중간에 16개의 현판에 적힌 시와 그 절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다음 시는 농산정에서 만날 수 있는 시이다.

    何日文昌入此巒(하일문창입차만) 최치원 선생 언제 이 산에 들어왔던가?

    白雲黃鶴渺然間(백운황학묘연간) 흰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우러진 때였도다.

    已將流水紅塵洗(이장유수홍진세) 이미 흐르는 물로써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不必重聾萬疊山(불필중농만첩산) 만겹 산으로 다시 귀를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文昌(문창); 문창후(文昌侯) 최치원 선생


    ▲폭신폭신한 발 밑의 느낌, 아름다운 나무들

    소리길을 걸을 때는 귀만 쫑긋 세울 것이 아니라 발의 감각도 예민하게 살려 둘 필요가 있다.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이라 발바닥에 느껴지는 질감이 카스테라 빵처럼 폭신폭신하다. 또 오랜 시간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곳이라 다양한 수종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특히 키가 큰 적송이 많은데, 소리길만큼 쭉쭉 뻗어 밀집돼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그 커다란 키에서 알 수 있듯이 수령이 오래되어 그 나이도 일일이 가늠하기 힘들다고 한다. 길을 가면서 고욤나무, 산뽕나무, 물푸레나무, 졸참나무, 다릅나무, 조록싸리, 대팻집나무 등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나무들이 많다. 또 나무들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탐방객이 고개를 숙여 나뭇가지 아래를 지나야 하는 구간이 몇 군데 있다. 가지에 ‘하심(下心)’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어 고개를 숙일 때 슬며시 웃음이 번진다. 그 수많은 수종들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나무는 생강나무와 노각나무이다. 생강나무는 잎이나 줄기를 손에 문질러 냄새를 맡아 보면 생강열매 냄새가 나는 신기한 나무다. 또 노각나무는 차나무과의 나무로 5월에 꽃을 피우고 10월에 열매가 익는데, 이름 그대로 수피가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띤다.

    ▲이것은 알고 갑시다

    소리길 개방과 함께 가장 우려되는 일은 자연 훼손이다. 좋은 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다들 같아서, 불쑥불쑥 계곡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리길은 엄연히 가야산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보호구역으로 흡연, 취사와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금지돼 있다. 이를 어겼다가는 과태료와 함께 에티켓이 부족한 탐방객 딱지가 붙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연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과 보존’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어려운 존재다. 홍류문이 나오는 교량4를 건너면 문화재관람료 3000원을 내야 한다. 종종 탐방객이 해인사 관람을 온 것이 아니라며 항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일대부터 해인사가 관할하는 문화재보호구역과 겹치기 때문이라 관람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참고로 대장경축전 관람자는 무료로 탐방이 가능하다. 길을 다 걸었다면 해인사 아래 치인리 마을 일대의 식당에 들러 더덕이나 송이버섯 요리, 전통사찰음식을 맛보기를 권한다. 도심에서 먹는 음식과는 입안에서 풍기는 향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홍류동(紅流洞)이라는 이름이 가을 단풍이 붉어 흐르는 물까지도 붉게 보인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하니, 다가오는 단풍철 바람소리 물소리를 따라 최치원 선생의 마지막 길을 유유히 순례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글=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답사동행=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 행정과 이의철, 탐방시설과 안후남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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