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19) 남해 (끝)아직 식지 않은 100년 전 남해 독립 열기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8년 8월부터 경남의 독립만세운동을 조명해왔고 그 마지막이 남해다.
창원에서 취재차를 타고 남해대교에 다다랐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르는 바다는 바로 노량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였던 곳....차상호 기자 2020-04-21 21:19:11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18) 함양민초, 총검 앞 격렬한 만세운동… 불교 선사 독립운동 활발‘군중대열에서 뛰쳐나온 하승현은 일 헌병에 “검거한 우리 애국인사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윤영하가 분견소를 박차고 돌진하자 일군 헌병들은 일제히 총격을 가해 왔다. 하승현은 쓰러져 즉사하고 윤영하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 흉보를 듣고 달려온 하...김재경 기자 2020-03-10 21:01:25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17) 거창총검도 막지 못한 장기리시장·위천장터 만세 함성거창에서는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그날의 역사를 온전히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만세운동도 새롭게 고증돼 주목을 받는다. 거창으로 퍼진 독립운동 함성은 지금껏 우리가 알아온 것보다 더 컸다.
◇거창에 남은 곽종석 선생의 족적= 3·1운...김재경 기자 2020-02-11 21:05:04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16) 거제아주장터 ‘만세운동 불길’ 옥포까지 번졌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정문 앞, 이곳은 거제의 첫 독립운동인 아주장터 만세운동이 펼쳐진 곳이다. 100년 전엔 독립만세를 외치는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지만, 지금은 차디찬 아스팔트와 거대한 조선소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장터는 없어진 지 오래고, 만...조고운 기자 2020-01-15 07:58:28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⑮ 시위 규모 크고 격렬했던 합천일제 총검에도 꺾이지 않은 합천의 독립 열기2013년 11월 국가기록원은 ‘삼일운동 시 피살자 명부’를 공개했다. 1953년 우리 정부가 조사한 기록이다.
만세운동 때 일제에 의해 피살된 645명의 이름과 주소 등이 등재돼 있고, 합천 피살자는 4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삼가장터 21명, 초계 10명, 대양 9...차상호 기자 2019-12-17 21:02:27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⑭ 파리장서운동 출발지 산청파리 보낸 ‘독립청원서’ 산청 유림이 주도했다산청은 3·1운동 당시 면우 곽종석 선생이 파리강화회의에 장서를 보내 조국의 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운동’의 출발지가 된 곳이자 유림 독립운동의 중심이 된 곳이다. 앞서선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손꼽히는 남명 조식 선생이 산천재에 기거하며 영남 3대 ...김재경 기자 2019-11-12 21:40:41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⑬ 치열한 독립운동 펼쳐진 통영독립운동 목숨 바친 청년·여성들 민중 일깨웠다“우리에게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다오.”
1919년 3월 통영, 스무두 살의 진평헌은 독립선언 격문 ‘동포에게 격하노라!’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경성(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한 뒤 고향에 내려와 만세시위를 준비하다 ‘독립선언문’을 구하지 못해 직접 쓰게 된 격문...조고운 기자 2019-10-31 21:02:32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⑫ 치열한 만세운동 전개된 고성거리 곳곳 울려퍼진 독립 함성 총칼도 막지 못했다기미년 3월부터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던 독립만세운동. 고성에서도 어느 곳 못지않게 거세게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고성에서는 100년 전 그해 3월 20일부터 수차례나 만세운동이 진행됐다. 성내는 물론이고 상리, 회화, 대가, 영오까지 만세운동의 물결이 이어졌...차상호 기자 2019-09-10 20:50:07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⑪ 호국의 성지 창녕군청년 결사단 23인, 이 다리서 맨주먹으로 총검 맞섰다창녕군은 많은 충신과 대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창녕 사람은 예로부터 의와 예를 숭상하는 기질이 강해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뿐 아니라 항일 유림운동, 3·1독립만세운동 때 영산의 23인 결사단 등 많은 애국지사와 독립투사들이 이 땅에서 고국을 지키고자 목숨...김재경 기자 2019-08-13 20:49:12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⑩ 도내 최초 만세운동 일어난 함안만세운동 불길 ‘가장 먼저’·‘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곳‘이것은 본도에서 악성의 소요로서 그 정도도 전체로 보아 가장 심하였다.’ 일본군이 남긴 함안지역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기록이다. 함안군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9일 도내에서 가장 먼저 시작돼 4월 3일까지 34일간 11회 이상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20명이 ...조고운 기자 2019-07-09 21:17:29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⑨ 4·3 삼진의거마산 삼진(진전·진북·진동) 주민 수천명 독립 외친 ‘기미년 4대 의거’일제에 의해 이름마저 빼잇긴 그곳이었다. 진해군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삼진(진동면, 진북면, 진전면)은 진해라고 불렸지만 일제에 의해 진해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일제는 진해라는 이름을 해군기지가 건설된 웅천에다 가져다 붙였다. 러일전쟁을 대비해 ‘바다를...차상호 기자 2019-06-11 21:09:59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⑧ 충렬의 고장 양산1919년 3월 13일 양산서 동부경남 첫 독립함성 울려퍼졌다
양산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1919 양산으로부터의 울림전’./김승권 기자/
양산시 물금읍에는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이 기념탑은 양산 출신으로 항일 독립투쟁에 헌신한 선열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김재경 기자 2019-04-30 22:00:00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⑦ 들불처럼 만세운동 일어난 김해1919년 3월 30일 밤 9시 김해 읍내장터 뜨거운 ‘독립 함성’
1919년 3월 30일, 김해읍내 장터의 공기는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장날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장꾼들의 소란스러움 사이사이 은밀하고 민첩한 움직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저무는 밤 9시 무렵,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떠난 빈 장터는 삼삼오오...조고운 기자 2019-04-09 22:00:00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인정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들100년 전, 한반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침탈에 항거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사람은 1만5000여명. 당시 독립운동의 규모를 생각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이 때문에 아직도 내 ...안대훈 기자 2019-03-03 22:00:00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⑥ 충의의 고장 의령장날 시작된 마세운동, 일주일간 의령 전역에 번지다
의령군 부림면을 찾은 날은 마침 신반장날이었다. 장터는 북적였다. 100년 전인 기미년(1919년) 3월 15일도 신반장날이었다.
그해 신반장은 인파로 가득 찼다. 하루 전인 3월 14일 의령읍 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최정학은 신반으로 와 정주성에게 등사한...차상호 기자 2019-03-03 2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