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하청노동자 현실 알렸지만 저임금 개선은 ‘숙제’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타결

기사입력 : 2022-07-24 21:35:02

  •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이 51일째를 맞은 지난 22일 협상 타결로 마무리됐다.

    이번 파업은 공권력 투입 압박 속에서도 조선 하청노동자의 실상을 사회에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노조가 직면한 손해배상청구 문제와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난 22일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협력사 대표들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 세 번째부터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난 22일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협력사 대표들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 세 번째부터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연합뉴스/

    ◇하청노동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사실상 협상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2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 사내협력사협의회는 오전 8시부터 협상에 돌입했다. 이어 오후 4시 9분께 잠정 합의안이 도출됐다. 주요 내용은 △임금 4.5% 인상 △설·추석 등 명절 50만원·여름휴가 40만원 상여금 지급 △고용계약 최소 1년 단위 체결 △재하도급 금지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승계 원칙적 합의 등이다. 이후 진행된 노조 총회 투표에서 조합원 96%가 찬성하며 협상이 최종 타결됐다.

    협상이 타결되자 옥포조선소 1도크 내에 직접 1㎥ 철구조물을 만들고 스스로를 가둔 채 농성을 벌인 유최안 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도크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던 조합원 6명이 31일 만에 지상으로 내려왔다.

    불법파업 논란을 낳기도 한 유 부지회장의 철장 농성은 이번 파업의 상징이 됐다. 철장 안에서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외치던 그는 조선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렸다. 실제로 대다수 대형 조선소는 하청업체를 두고 이들 하청업체가 재차 물량팀을 둬 일감을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구조 속에서 하청노동자는 업무량에 비해 저임금에 시달렸고, 최근 5년여간 조선업 불황 속 7만여명의 하청노동자가 떠났다.

    협상 타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금속노조 윤장혁 위원장은 “0.3평(1㎥)이라는 공간에 31일간 자신을 가둔 유최안 부지회장의 모습은 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삶 그 자체였다”며 “그 삶이 전국적, 사회적 문제로 확산해 하청노동자의 실상을 사회적으로 알렸다는 데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족하고 늦은 협상 기간… 노사 모두 불만족= 협상 타결을 이끌어 낸 노사간 대화는 공권력 투입을 시사한 정부 담화문이 발표된 다음 날인 15일 시작됐다. 23일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상 협상 기간은 22일까지로 단 8일이었다. 그보다 앞선 지난달 2일 노조 파업이 시작됐다. 또, 그보다 앞선 지난해부터 노조는 사측에 집단교섭 요구를 했다. 시간은 많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 대화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단 8일 만에 나온 합의서는 노사 양측 누구나 만족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초라하고 걸레 같은 합의서.’ 김형수 하청지회장은 짧게 합의 내용을 평가했다. 파업을 시작하면서 요구했던 ‘임금 30% 인상’은 절반에 절반도 못 미치는 사측 요구안인 ‘4.5% 인상’에 결국 수용했고, 폐업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한 고용승계도 확답을 받지 못했다. 특히, 협상 과정에서 최대 걸림돌이 됐던 ‘손해배상소송’ 문제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추후 별도로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측 또한 호황기가 찾아온 시점에 파업으로 인해 선박 건조 작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급하게 협상에 임했다. 22일 오후 6시 30분께 점거 농성이 끝나자마자 1도크에는 물이 채워졌다. 예정일이 5주간 늦춰진 30만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에 대한 작업을 곧장 착수하기 위해서다. 파업 사태로 인해 지연된 배는 총 3척이다. 대형 선박 계약은 납기일을 지키지 못할 경우 업계 내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줄수도 있다. 계약에 따라 지체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22일 오후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1도크에 설치된 철 구조물에서 빠져나오고 있다./금속노조/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22일 오후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1도크에 설치된 철 구조물에서 빠져나오고 있다./금속노조/

    ◇‘민형사상 책임’ 문제 갈등의 불씨로 남아=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문제는 추후 논의하기로 하면서 갈등의 불씨로 남게 됐다.

    현재 사측은 노조 집행부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정부 또한 22일 입장문을 통해 “불법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형사 책임을 노조에 묻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노조 측은 경찰에 출석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문제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사측은 하루당 320억원(매출 260억원·고정비 60억원), 총 7000여억원의 손해액이 발생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노조에게 묻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노동자를 억압하는 수단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애초에 합법적인 쟁의행위로 이루어진 파업이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과거에도 수차례 이뤄졌다. 200~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수십·수백억원의 손해를 배상할 능력도, 소송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렵기에 생활고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이어졌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향후 지속적으로 하청노동자와 사측간의 임단협이 진행될 가운데, 사측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게 되면 앞으로 노사 협상 과정에서 사측의 협박같은 협상카드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 노조는 지도부가 민형사 책임을 지더라도 조합원에는 영향이 가지 않도록 조율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협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절반의 해결, 정부 관심 절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며 일어난 노동쟁의는 고질적인 문제를 사회에 알리며 마무리됐다.

    협상 과정에서 노사는 저임금 구조 개선방안 등을 논의하는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국내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동현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노동계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향후 국내 조선업 고용 형태에 대한 개선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9·20일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한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노조에게 “농성을 해제하면 구조적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22일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이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노동개혁이 필요한 시기”라며 “이번 갈등의 원인이었던 원청-하청업체 간 문제 등 조선업의 구조적 과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 또한 같은 날 SNS를 통해 “상생에 기반한 새로운 노사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