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경남 노동계 분규 사업장 (4) 한국지엠

똑같은 일하고 차별 대우… 비정규직 투쟁 16년

기사입력 : 2021-08-02 21:14:17

  •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단어 ‘비정규직’.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고, 1998년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부터 업계를 가리지 않고 규모를 키워 왔다. 정규직 직원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물론 복지 혜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홀대를 당하는 이들. 시나브로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당연한 듯 사회에 자리 잡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GM대우 비정규직 노조원 4명의 고공농성 돌입 11일째인 지난 2006년 4월 1일 GM대우창원공장 정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노동자들이 컨테이너 장애물 위에서 사측의 물대포에 온몸으로 맞서 부당해고 관련 플래카드를 펼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경남신문DB/
    GM대우 비정규직 노조원 4명의 고공농성 돌입 11일째인 지난 2006년 4월 1일 GM대우창원공장 정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노동자들이 컨테이너 장애물 위에서 사측의 물대포에 온몸으로 맞서 부당해고 관련 플래카드를 펼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경남신문DB/

    ◇비정규직 투쟁 16년= 지난 2005년 결성된 전국금속노동조합 지엠대우창원비정규직지회의 출발점은 ‘비정규직’의 부당함을 느낀 몇몇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지엠대우 사내협력업체 6곳이 2003년 12월~2005년 1월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자 843명을 창원공장 조립·생산업무에 투입했던 점을 두고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서’를 낸 것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2005년 4월, 고용노동부는 지엠대우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면서 지회의 손을 들어줬지만, 같은 해 9월 협력업체 한 곳의 폐업으로 86명이 해고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2006년 2월, 단기계약직 1명이 추가 해고되면서 지회는 농성의 강도를 높였고, 같은 달 노동부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닉 라일리 지엠대우 사장과 6개 하청업체 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고소된 사측 임원들을 약식기소했지만 회사 측이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노조는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야만 했다.

    2013년 대법원의 판결에도 사측의 태도는 변화가 없었고, 그해 비정규직 노동자 5명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시작으로 노동자들의 법적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줄줄이 들려오는 노동자 승소 소식에도 사측은 승소한 일부 노동자들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2019년엔 창원공장의 기존 2교대 근무의 1교대 전환과 경영악화를 이유로 7개 사내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종료하고, 무려 58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 과정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을 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면서 지난해 1월 최종 한국지엠 부사장과 경남도, 창원시 관계자가 동석한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 총고용 관련 합의서가 작성됐다.

    하지만 당시 노동자들 사이에선 “합의서에는 금속노조와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서명만 담겼을 뿐 사측은 구두로만 약속했으며, 각 조항에도 ‘노력한다’, ‘적극 추진한다’ 등의 추상적인 표현이 쓰였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고, 이들의 예감은 현실이 돼 현재까지도 복직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배성도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지회장은 지난 15일 경남도청 앞에서 열린 ‘경남 투쟁사업장 결의대회’에서 “한국지엠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불법을 감추려고 뒤에서 꼼수를 부리고 조합원 대부분이 해고됐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대량 해고 이어 부품물류센터 폐쇄까지= 지난해 2월, 한국지엠은 부품물류 구조 단순화 차원에서 창원·제주 부품물류센터를 정리한 뒤 외주화하겠다는 방침을 일방 통보했다.

    앞서 사측이 인천부품물류센터를 폐쇄하고 세종부품물류센터로 통합하는 과정에 비정규직 노동자 13명 중 12명의 해고와 나머지 1명의 복귀 투쟁을 지켜봤던 창원센터 현장직·사무직·비정규직 노조는 공동 대응팀을 꾸리고 폐쇄 저지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400일 넘는 폐쇄 저지 투쟁에도 창원센터는 지난 3월 31일 폐쇄됐다. 창원센터에 근무하던 노동자 46명(정규직 20명, 비정규직 26명) 중 비정규직 26명은 4월 30일 모두 해고됐다. 이들은 평균 20년 가량 한국지엠을 위해 일했다.

    노동자들은 창원센터 폐쇄는 외국자본인 한국지엠이 국내시장에서 발을 빼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주장한다.

    허원 한국지엠창원부품물류비정규직지회장은 “부품물류는 지엠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사업이었다. 지엠은 세종물류로 통합한 이후 부품물류 파트 전체를 외주화하면 더 많은 수익을 글로벌 지엠으로 빼돌릴 수 있게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한국지엠은 막대한 만성 적자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이는 구조조정과 ‘먹튀’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고 전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 한국지엠의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호황기 대비 10만대 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부품물류센터를 전국 곳곳에 운영하는 것에 대한 내부적인 고민 끝내 내린 결정”이라며 반박했지만,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허 지회장은 “지엠대우 때부터 20년 가량 이곳에서 일했는데 한국지엠의 망설임 없는 해고에 다들 분노한다. 지난 2019년 창원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500여명의 비정규직도 공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노동자들은 앞서 1년 넘게 함께 투쟁해 왔듯 일자리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앞으로도 함께 싸울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한얼 기자 leehe@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