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경남 노동계 분규 사업장 (1) 한국산연

법인청산 천막농성 1년…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입력 : 2021-07-13 21:17:03

  • 한국의 선진국 지위 상승과 코로나19 속 경기 회복세 등 긍정적인 소식이 잇따르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밝지만은 않다. 특히 제조업 중심지 경남의 노동계는 외국투자 자본의 횡포와 위장폐업, 회사 매각 등의 이슈로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지쳐가는 여름, 작열하는 햇볕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투쟁하는 도내 분규사업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경영악화 이유 일방적 회사 폐업
    외국인투자 혜택만 누린 후 청산
    사측 사태 해결 의지·대화 없어

    한일 연대투쟁, 1년 버틴 원동력
    日 시민단체 국제연대로 힘 보태
    외투기업 규제법안 마련은 과제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 조합원들이 13일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한국산연 앞에서 위장폐업 철회 투쟁 1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 조합원들이 13일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한국산연 앞에서 위장폐업 철회 투쟁 1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법인해산’ 한국산연, 천막농성 1년= 한국산연은 지난해 7월 16일 공지를 통해 ‘누적손실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회사의 폐업을 예고했다. 사측은 단체협약에 따라 공지 6개월 뒤인 2021년 1월 20일 모든 종업원에 대한 근로관계 종료를 함께 통보했다.

    사측의 일방적 폐업 추진 소식을 접한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13일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한국산연 출자기업인 일본 산켄전기가 누적 손실 583억원을 주장하면서도 2018년 ㈜EK(옛 ㈜지흥)를 인수, 흑자를 내는 상황을 근거로 들며 ‘위장폐업’을 주장했다. 조세·현금·입지 지원 인센티브 등 외국인투자 촉진법상 혜택만 고스란히 누린 뒤 국내를 빠져나가는 외투자본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지회는 국회, 한국산연 사장 자택 앞, 산켄전기코리아, 주한일본대사관, ㈜EK 일대 등에서 선전전·1인 시위를 펼치며 일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이들의 투쟁에 도내 노동·시민사회·진보정당 등은 지난해 9월 ‘한국산연 청산 철회·생존권 보장 경남대책위원회’를 출범해 산켄전기와 일본 후생노동성·경제산업성에 항의 서한을 보내는 등 힘을 보탰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침묵으로 일관했고, 지난 1월 20일 한국산연 법인해산 등기를 마쳤다.

    지회 노동자들은 사측의 폐업 이후에도 천막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지난 3월에는 ‘사측의 위장폐업으로 자행된 해고는 부당하다’며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노위는 이들의 신청 건과 관련해 지난 5월 “노사간 화해를 권고한다”며 일주일의 조정기간을 부여했지만, 사측은 대화 창구를 마련하기는 커녕 노동자를 무시하는 처사를 보였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폐업 철회 천막농성이 1주년을 맞이한 13일 오전, 이제는 매각된 한국산연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외쳤다.

    오해진 한국산연지회장은 “한국산연과 산켄전기 자본의 일방적인 해산청산결정으로 투쟁한지도 벌써 1년이 됐다. 그러나 산켄전기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그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다시금 투쟁을 시작한다. 산켄전기가 정권과 결탁해 유례없는 탄압을 자행함에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경 허문 연대투쟁… 외투자본 규제 ‘시사점’= 한국산연 폐업 철회와 공장 정상화를 위한 노사 대화는 단절됐지만, 이번 한국산연 사태로 성사된 한일 연대투쟁은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1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산연 지회와 도내 노동·시민사회·진보정당 등이 국내 투쟁을 이어가는 동안 일본에서도 ‘한국산연노조와 연대하는 사이타마 시민모임’·‘한국산연노조를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됐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산켄전기 본사(사이타마현 니자시)와 영업소 등에서 항의집회를 여는 등 한국산연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로 힘을 보탰다.

    지난 5월에는 ‘한국산연노조와 연대하는 사이타마 시민모임’에 참여한 일본 시민이 구속되기도 했다. 지노위가 산켄전기와 한국산연 노동자에게 화해를 권고하며 부여했던 조정기간 중이던 지난 5월 10일 ‘한국산연 폐업 반대’ 출근 선전전을 벌이던 오자와 다카시(71)씨가 사측 신고로 경찰에 연행됐다. 이후 오자와씨는 같은 달 31일 폭행·위력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돼 현재까지 풀려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자와씨의 구속은 한일 노동자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산연 지회는 공장 정상화라는 목표에 오자와씨의 석방까지 더해 더욱 가열찬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오해진 지회장은 “산켄전기가 한국산연 투쟁을 파괴하려고 한 짓이겠지만, 우리 노동자들을 향한 지원의 폭은 오히려 더 넓어지고 단단해지고 있다”면서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지역 동지들은 물론 국제연대를 더욱 강화하여 한일 노동자의 연대로 하루빨리 오자와 씨의 석방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투기업에 대한 규제법안 마련은 과제로 남았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제정해 특례 조항을 두고 외투기업에 대한 조세 감면 등의 혜택을 줬다. 지난 2019년 관련 조항이 폐지되긴 했지만, 이 기간 외투기업은 최대 7년간 법인·소득세 감면과 행정절차 간소화 등의 혜택을 누리며 국내 시장에서 이익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투자 자유화와 투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철수와 투자금 회수를 제한하는 등 책임을 묻는 제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고, 산켄전기의 한국산연 폐업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형광 한국산연지회 사무장은 “정부는 하루빨리 외투자본에 대한 규제법안을 마련해 도내 노동자, 나아가 국내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한얼 기자 leehe@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