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칼럼] 검지 내리기- 정재흔(창원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기사입력 : 2014-01-02 11:00:00





  • 세상엔 많은 사람이 있다. 성별, 인종, 성격, 신체 등 세상엔 다른 사람들이 있다. 내 아버지도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버지를 손가락질한다. 내가 옆집 아이와 다르듯 우리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뿐인데….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다. 열 살배기 철없던 어린아이는 너무 추운 나머지 백열전구를 이부자리 안에 가져와 잠을 청하다 목 부분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놀라 아이를 업고 산길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고 아이는 곧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시골병원이라 그런지 수술은 깔끔하지 못했고 봉합이 채 아물기도 전에 상처에선 고름과 진물이 흘러내리며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재수술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안 좋았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엉덩이, 허벅지 살을 떼어내 붙였기 때문에 다 나아서도 흉한 모습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딸과 아들 하나씩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아버지는 공중목욕탕 가길 꺼린다. 나와 동생의 유치원 재롱잔치나 입학식, 졸업식 사진에는 항상 어머니만 계신다. 어머니는 매년 여름, 새로 산 아버지의 여름 남방을 차이나 칼라로 수선한다.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이미 나은 흉터는 생활에 크게 불편을 주진 않지만, 이따금 아버지를 아프게 한다. 아마 아버지는 평생을 떠안고 가셔야 할 것이다. 신기한 것을 본다는 시선과 징그럽다, 불쌍하다는 시선 외에도 아버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꽂히는 수백 수천 개의 검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런 아버지의 딸이라서 난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눈을 가지게 됐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생활환경이 다르거나 심각한 고도비만의 사람 등을 아무 생각 없이 보는 눈이다. 편견이나 동정, 혐오 같은 감정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잘 알기에 절대로 뭔가를 담은 눈을 할 수 없다. 내가 그들을 손가락질할 때마다 그 손가락이 다시 아버지를 향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만큼은 그들에게 그래선 안 되었다.

    SNS에 올라온 미국의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고 그들의 시민 의식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동성 부부의 아이들을 놀려대며 욕하던 아이를 시민들이 따끔하게 야단치며 그들의 부모님은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에 내 가슴 한편에서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장애나 동성애뿐만이 아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나 부모없는 아이 등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뿐이랴, 공부를 못하거나 얼굴이 못생겼다고 상처 주는 일도 허다하다.

    TV에서 어떤 장애인 단체의 구성원이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입니다. 정상인이 아니니까 비정상인이라고 해야 하는 겁니다. 장애는 비정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타인에게 몹시 엄격하다. 그 다르다는 기준이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검지로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아버지의 흉터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다르다는 것을 알아만 주면 될 텐데, 아직 우리 사회의 검지는 매섭기만 하다.

    정재흔 창원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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