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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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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산 정상엔 산자고가 폈다- 이 헌(거제대학 교수)

재보선 당선자는 스스로 했던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가 되길

  • 기사입력 : 2011-04-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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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초 인기리에 종료된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해병대에 입대했다는 소문과 그가 탁월한 적응력을 보인 훈련소 생활 등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지도층의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회피 등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들을 보아 오던 시민들은 한 연예인의 행보에서 신선하다 못해 신비로움까지 느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 주류층의 의무와 도덕성의 문제는 시대와 무관하게 지적되고 논란이지만, 탈무드 중 동화로도 소개되고 있는 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뱀의 꼬리는 언제나 몸체 끝에서 머리에 끌려다니는 것이 불만이었다. 어느 날 꼬리는 불만을 쏟아 놓았다. “어째서 나는 항상 너의 뒤만 따르고 나 자신의 의견조차 네가 말하며 심지어 내가 갈 곳도 네가 결정하느냐. 마치 나는 너의 노예와 같다.” 이에 머리가 대꾸했다. “어리석구나. 너는 앞을 볼 수 있는 눈도 위험을 알아차릴 귀도 없으며, 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지 않으냐?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며 살아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안전하게 이끄는 것이 곧 너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꼬리는 비웃으며, “그런 소리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생각해 보라. 그런 말이야말로 독재자가 하는 소리 아닌가.” 그리고는 꼬리가 앞장서 나아갔다. 이후 가는 곳마다 뱀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때때로 지도자는 우리의 상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그는 필요하고 그 필요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와 더불어 바른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해당 지역에서 치러진 각종 보궐선거에서 진정한 머리 구실을 할 이가 선택되었길 바란다. 남은 임기 동안 단순한 상전이 아닌 우리의 지도자로서 충실을 기해줄 것을 기대한다. 진정한 지도자, 선량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이길 그리고 선택 과정에서의 스스로 했던 약속들을 엄격히 지켜주길….

    이곳 거제엔 산과 봉우리가 모두 11개 있다. 그중 정상에 오르면 섬의 전역은 물론 동서남북 멀리까지 시선을 넓힐 수 있는 북병산이 있다. 요즘 그곳에 오르면 중턱에서부터 춘란이 꽃을 피우고, 족두리풀, 얼레지, 산수유, 삼지닥나무가 모두 봄단장을 하고 서둘러 초록의 잎을 내민다. 이런 산책길을 얼마쯤 오르면 한동안 능선을 따르고, 눈을 돌려 잠시 남도의 풍광에 어울릴 때쯤 산 정상에 선다. 정상엔 남동쪽을 향한 큰 절벽바위가 있고 이를 예전부터 ‘달뜬바위’라고 부른다.

    달이 좋을 무렵 이곳에선 인근 작은 섬과 섬 사이로 달빛의 물길을 만들어 내는 풍광이 절대미가 될 듯싶다. 정상부 달뜬바위에서 넋을 풀고 있다가 다리를 쉴 겸 앉으면 발아래 틈바구니에 난초잎을 닮은 두어 가닥의 풀 포기가 있다. 여러 포기다. 등산으로 거친 호흡을 고르고 포기 사이로 흰빛 꽃 한 송이를 피운 꽃대를 보면 산의 정상에서는 만날 수 없을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이가 산자고(山慈姑)다. 산자고는 남녘 섬지방의 양지쪽에선 흔히 볼 수 있지만 산 정상에서의 만남은 새롭기가 그지없고 입품을 팔아 물어보면 아랫마을에선 ‘물굿’ 또는 ‘까치무릇’으로 불리는 약용식물로 ‘동의보감’의 ‘가최무릇’이 그것이다. 이 이름을 따라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까 싶어 궁금해 보지만 딱히 알 수 없고, 그저 ‘자상한 시어머니’란 생각에 꽃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북병산 정상, 달뜬바위엔 산자고가 폈다. 정상을 오른 이에게 무릇 인자함과 자상함을 잃지 말라는 의도는 아닐까. 이번 보궐선거의 지도자는 물론 모든 지도자가 산자고 핀 절기가 끝나기 전 이 산을 올랐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고운 눈빛으로 자신을 선택한 이들을 생각해 준다면….

    이 헌(거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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