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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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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82) ‘나는 가수다’ 논란을 칼럼으로 쓴다면

재도전 기회 부여는 공정했나? 아니라면 왜?

  • 기사입력 : 2011-04-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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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짱: 대학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는 학생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칼럼을 써봤습니다.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한 걸 질타하기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긍정적인 논지의 글을 썼거든요. 그런데 제 칼럼을 읽은 친구가 제 생각과 다르다는 얘기를 해서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글샘: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요. 다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지를 전개했는가에 따라 다르죠. 학생이 쓴 칼럼의 내용을 일부만 소개해 줄래요?

    글짱: 요약해서 알려 드릴게요. <7명의 가수들의 경합에서 탈락한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는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훈훈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직후 김건모의 탈락에 눈물을 보이던 이소라, 탈락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베테랑 가수 김건모, 재도전 기회 부여를 주장했던 김제동, 제안을 수락한 김영희 피디를 향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타진요 사태 때도 네티즌들은 맹목적으로 공격하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자 너도나도 타블로를 옹호하는 태도로 돌변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시청률이 보장된 프로그램이라는 평을 받던 ‘나는 가수다’에 대한 시청자들의 무분별한 비판은 그들을 저버린 믿음에 대한 충고였을까? 복수였을까?>

    글샘: 큰 틀에서 볼 때, 잘 쓴 글이네요. 다만 도입부에 있는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는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훈훈했다>라는 대목은 개인의 생각만을 표현한 듯해 아쉽네요. 칼럼이란 게 개인 생각을 표출하는 글이라지만 어느 정도 객관화한 표현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거든요.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는 모습에 훈훈하다고 느낀 시청자도 많았을 것이다> 정도로 썼으면 어땠을까요?

    글짱: 그렇군요. 이런 주제로 칼럼을 쓸 때 어떤 논지로 전개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이 될까요?

    글샘: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존중해 주는 게 기본입니다. 일간신문의 칼럼도 참고하고 공방이 오가는 사이버공간의 글도 읽어 보는 게 좋죠. 어제(4일) 경남신문의 ‘경남시론’ 칼럼에 실린 어느 교수의 ‘2등도 더러운 세상’이라는 글과, 3월 28일자 ‘가고파’에 실린 ‘원칙과 휴머니티’라는 글을 보면 생각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글짱: 그 칼럼을 경남신문에서 찾아 꼼꼼하게 읽어 봐야겠네요. 그런데 그 칼럼들은 어떤 주제로 썼나요? 그리고 결론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궁금해요.

    글샘: ‘2등도 더러운 세상’이란 글은 <최근 각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 등이 TV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이런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이며 ‘나는 가수다’는 그 정점에 자리한다>는 논지의 글입니다. <경쟁은 이미 우리의 삶의 핵심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오락거리이며 또 돈벌이>라고 강조한 뒤, <‘나는 가수다’는 소모로 치닫는 경쟁의 속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징후적이다>라고 주장하죠. 그러면서 <살벌한 경쟁의 일터에서 잠시 풀려나 티브이 앞에 앉은 우리들의 영혼이 또다시 경쟁이라는 구경거리에 포획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 ‘원칙과 휴머니티’라는 글은 학생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네요. 이번 사태의 책임은 서바이벌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제작진에 있다는 전제하에, 원칙을 깬 원인이 서바이벌 노래 실력을 겨룬 가수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기에 김영희 피디의 경질은 섣부른 감이 있다고 주장하거든요. 결론에선 <원칙도 중요하지만 휴머니티(동료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글짱: 제가 몰랐던 칼럼니스트들의 주장 중에 참고할 만한 글은 어떤 게 있나요?

    글샘: 제가 본 글 중에 다양한 시각의 예문을 몇 가지 소개하며 조언을 마칠게요.

    ☞ 탈락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개인들만을 비판하기보다는 평가 시스템의 상상력 혹은 기획력 부재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탈락자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공감대는 제작진과 출연자들만 공유했고 시청자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은 상태였다.

    ☞ 정말로 공정한 포맷으로 드디어 이렇게 긴장하면서 보는 감동적이기까지 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걸 무너뜨려 버렸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情)이란 무엇인가’가 됐다.

    ☞ 원칙과 공정은 청문회에서 찾아야지, 예능과 음악에서 찾으면 안 된다.

    ☞ 공정의 가치는 사회 통합과 발전을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힘 있는 자들’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 시청자들은 엄격할 줄 알고 공정한 승부를 기대했다. 반면 출연자들은 유연한 줄 알고 시정을 요구했다.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논쟁은 어찌 보면 ‘서바이벌 방식’이라는 장치의 실패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도 볼 수 있다.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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