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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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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59) 황강 7 거창군 가조면~북상면 개금마을

옛집, 돌담, 솔숲, 황강 발원지… 눈길과 발길이 함께 가는 길

  • 기사입력 : 2011-03-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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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북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송풍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휴식한 곳이기도 하다.
     
    춘당집과 춘정집 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보호각
     

    지구촌이 50년 만에 지독한 강추위와 폭설로 교통이 두절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했다. 지구의 재앙으로 봄이 겨울로 후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연은 봄의 화신을 우리 땅 곳곳에 내려놓고 있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이 25개나 있는 거창은 문화유산을 찾는 사람들보다 오지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꽃샘추위로 날씨가 차갑지만 산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창촌리 선돌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면 가조면 끝자락에 기암절벽 장군봉이 병풍처럼 안고 있는 가조면 사병리가 있다.

    ◇춘당집·춘정집 책판, 사병리 변씨고가

    가조면 사병리 마을을 안고 있는 장군봉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옛날 바다였던 이곳에 장군이 탄 나룻배가 표류하고 있었다. 이를 본 옥황상제가 장군을 구하기 위해 도력이 뛰어난 자기 딸을 지상으로 내려 보냈다. 그러나 옥황상제의 딸과 장군은 사랑에 빠졌다. 장군을 구해주고 돌아오기를 기다린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너희들은 영원히 산으로 변해 누워 있으라”라는 벌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미녀봉이 생겨나고 그 북쪽에 장군봉이 솟아났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온다.

    사병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변씨고가 이정표가 있고 느티나무 부근에 춘당집과 춘정집 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보호각이 있다.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책판을 볼 수 없었으나 마을 인근에 사는 후손을 만나 잠시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는 춘당 변중량(1345~1398)과 그의 아우 춘정 변계량(1369~1430)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귀중한 책판 117매가 보관되어 있다. 1398년(태조 7년)에 목숨을 잃은 변중량의 시문을 모은 ‘춘당집’은 1823년(순조 23년)에 간행되었다. ‘춘정집’은 1424년(세종 24년)에 밀양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특히 이 문집들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넘어오는 과도기의 정치 상황과 사상을 알려주는 다양한 역사적 자료로 가치가 크다.

    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포근함을 주는 흙 담장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돌바닥이 반질반질한 빨래터에는 금방이라도 수다를 떠는 아낙네들의 웃음과 방망이 소리가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깨뜨릴 것 같았다.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 2009년 11월 19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3호, 제487호로 지정된 거창 사병리 변씨고가가 있다. 큰집과 작은집의 주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큰집은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와 안사랑채, 그리고 중문채를 중심으로 구성한 ㅁ자형 주거 배치를 하고 있다. 큰집은 대문으로 진입한 사람이 사랑채와 부속건물로만 연결되도록 동선이 되어 있어 안채의 독립성을 배려했다. 작은집은 4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안채와 사랑채는 일자형 병렬로 배치되어 남부지방 부농주택의 공통적인 특성을 보인다. 특히 목욕실과 화장실은 맞은편 큰집과 공통으로 사용했고 연자방아는 작은집에서 큰집의 것을 썼다고 한다. 사병리 변씨고가는 부농주택의 평면 구성에서 장남과 차남의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형제 간의 깊은 우애를 엿볼 수 있다. 사람의 인기척은 찾아볼 수 없었고 허물어져 가는 고택은 긴 세월을 힘겹게 버티고 서 있었다.
    당동 당산
    용산숲

    ◇당동 당산·용산숲

    사병리 당동 마을에는 당산이 있다. 당산은 민간신앙에서 신을 모셔 놓은 집이다. 민간 신앙은 대부분 정월 대보름에 대지의 풍요와 다산, 가족의 안녕 등을 기원한다. 당동 마을 당산은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한 채 보존되고 있어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곳 당산은 돌과 흙을 적당히 섞어 바른 흙벽의 ‘당’ 집이 있으며 담장이 없이 자연석을 쌓아 올린 돌담도 흔치 않은 것이며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며 1858년(철종 9년)과 1878년(고종 15년)에 부분적인 중수가 있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사병리를 떠나 가북면 방향으로 나서면 지방도로 1099번 건너편 하천에 오래된 소나무 수십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한나절 여유와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부근에 용천정사와 원천정이 있고 마을 끝자락에는 낙모대도 있다. 낙모대는 문장을 즐기는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온종일 시를 짓고 흥을 돋우었던 곳이다.


    개금마을 황강 발원지


    ◇가북저수지·개금마을 발원지

    가북면 개금마을 목통령 방향으로 황강의 또 다른 발원지를 찾아 나서는데 인근 시장에 다녀오던 박춘자(84) 할머니가 보따리를 들고 손을 들었다. 가북저수지 방향에 있는 4km쯤 되는 공수마을까지 간다고 하셨다. 마을입구에서 내려달라고 하는 것을 돌담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길을 따라 집 앞까지 태워 드렸다. 시골에서는 냉수 한잔이 더 정겨울 것 같은데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하여 마음만 받겠다고 하고 가북저수지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가북저수지가 있는 박암마을로 가니 농사철을 앞두고 중장비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저수지 보강공사가 한창이었다.

    황강의 물줄기가 되는 몽석천이 흘러드는 가북면은 청정지역 고랭지 작물이 유명한 곳이다. 대표적인 특산물은 눈을 밝게 하고 신장을 보하며 양기를 돋운다는 오미자와 당뇨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마, 노화 방지와 신진대사를 촉진한다는 복분자가 있다.

    가북저수지는 박암마을 북쪽 계곡을 가로막아서 만든 큰 저수지로서, 가야산에서 시작해 내려오는 물을 모은다. 1972년부터 10년 공사 끝에 1982년에 완공했으며, 이 일대에서는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저수지이다. 인근 저수지가 고갈되어도 풍족한 수량을 유지하며 가조면과 가북면 일대 논에 물을 주어 풍년이 들게 한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4월이 오면 겨울철 한산했던 저수지는 붕어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로 분주해진다.

    저수지를 따라가다 보면 용암리 부근에 가북저수지의 조망을 볼 수 있는 송풍대가 있다.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들이 있는 이곳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다. 최치원 선생은 난세에 천하를 주유하다가 고견사를 거쳐 이 송풍대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발원지를 찾으러 물길을 따라 개금마을로 가니 용암초등학교 개금분교장터 폐교 안내판이 먼저 반겨주었다. 1966년 개교해 졸업생 68명을 배출하고 1997년 3월에 폐교했다고 했다. 잡초가 무성한 텅빈 교정에는 녹슨 철봉만이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개금마을로 발걸음을 옮기니 버스종점 부근에 맑은 물이 있는 작은 연못이 소담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개금 경로당 앞에 맑은 샘물이 쉼없이 흐르는 또 다른 황강의 발원지가 있었다. 개금마을 노인회장 정필상(75)씨는 이 샘물이 1등 식수원이며 덕분에 장수 마을이라고 자랑이 대단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마을 노인 10여 명이 경로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들어오라 하여 체면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큰방과 작은방에 각각 밥상이 차려졌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 이분이(85) 할머니는 남자들 방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마을 인근에서 무공해로 농사 지은 쌀로 밥을 하고 신토불이 청국장에 고향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김장김치가 나왔다. 맛집으로 소개해도 손색이 없었다.

    마을 인근에는 한바탕 파동을 겪은 고랭지 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꼭 다시 놀러 오라고 하며 자동차가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서로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개금마을을 떠나는 발걸음은 행복한 여행길이었다.

    ☞여행 TIP- 맛집

    ▲강남식당 : ☏ 055-942-2089. 거창군 가북면 우혜리 1895. 된장찌개 5000원. 국밥 6000원. 추어탕 6000원. 산간오지 마을이라 그럴 듯한 식당은 없다. 가북면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로 키운 재료를 사용한다. 고향집 같은 신토불이 음식점이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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