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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을 걷다 (3) 지리산 둘레길(下) 인월~주천 구간

걸음걸음마다 판소리 흔적과 숨결
너른 운봉 들녘따라 논둑길·둑방길·오솔길…

  • 기사입력 : 2011-01-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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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방객이 저무는 해를 보며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을 잇는 운봉~주천 구간 중 회덕마을 앞을 걷고 있다./김승권기자/

    탐방객이 지리산 둘레길 인월~운봉 구간중 남원시 인월면 흥부골자연휴양림 산책로를 걷고 있다.

    ▲전북 남원시 인월면~남원시 운봉읍 구간(9.4㎞·4시간)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전과 흥부전의 배경이 된 남원은 판소리의 고장이다. 그중 지리산 둘레길은 판소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리산을 닮아 우람하고 기운찬 명창을 다수 배출했기 때문인데, 인월부터 운봉까지의 구간은 판소리의 흔적과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인월에 남아있는 판소리의 흔적은 흥부가이다. 아직도 이곳 주민들은 흥부가 인월에서 나고 자랐으며, 흥부가의 배경이 된 곳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의 정취를 따라 걷게 될 이 구간은 민박집이 즐비한 인월면 월평마을에서 시작된다. 월평마을 뒷산의 솔숲을 지나게 되는데, 이른 아침 숲속을 걸으며 마시는 맑은 공기와 청량한 새소리가 상쾌함을 더한다.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한 30여 분 걸으니 흥부골자연휴양림과 만날 수 있었다. 이곳부터는 힘들지 않는 편한 걸음이 시작된다. 흥부골자연휴양림을 따라 잘 닦여진 야트막한 산중 임도를 시작해 목적지인 운봉까지는 줄곧 넉넉한 농로와 둑방길을 걸으면 된다.

    흥부골자연휴양림을 끼고 마련된 임도를 따라 30여 분 걸으면, 길게 이어진 람천을 만나게 된다. 이곳부터 널찍한 제방길의 시작이다. 쌀쌀한 날씨에 평일인데도 단체 여행객들을 쉼 없이 만날 만큼 인기를 끄는 구간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에 눈길을 두고 20분쯤 걸었다. 그런데 절로 발길이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국악의 성지’를 만났기 때문이다.

    국악 전시관과 공연장 등을 갖춘 국악의 성지는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이자 조선 최고의 명창들이 탄생한 인월-운봉 구간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길을 걷다 잠시 쉬고 싶다면 국악의 성지를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비록 평소 국악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지리산둘레길과 국악의 인연을 또 한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국악의 성지를 뒤로한 채 다시 제방길을 걸었다. 람천을 따라 제방길을 걷노라면 앞으로 갈 길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만큼 걷는 게 이전에 비해 훨씬 수월하고 편안하다는 뜻이다.

    길을 편하게 걸으니 주변 풍경이 눈에 더 잘 들어올 수밖에 없다. 무리 지어 람천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청둥오리와 갖가지 철새부터, 바람에 날리는 억새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게 된다.

    1시간 남짓. 비슷한 풍경에 지치게 되는 시간.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던 차에 멀리서 나지막한 판소리 한 가락이 들리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걷느라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달래는 듯하다.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따라갔다. 그랬더니 비전마을이 나타났다. 비전마을은 동편제를 이룩한 조선 후기의 판소리 명창인 가왕(歌王) 송흥록이 태어나고, 국창 박초월이 자란 곳이다. 판소리는 바로 송흥록 생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전마을은 고려 말 이성계가 일본의 아지발도 군대를 인근 황산에서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황산대첩비가 서있는 곳인데,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송흥록 생가와 황산대첩비를 둘러본 뒤 강둑길을 따라 30여분 걸으면 신기마을이 나온다. 이 신기마을을 지나 이제는 익숙한 둑방길을 걸으면 목적지인 운봉읍이 가까워지고, 도착 직전 서림공원과 만나게 된다. 이 공원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이는 마주보고 있는 돌장승. 하나는 북쪽의 방어대장군과 또 하나는 남쪽의 진서대장군으로 운봉 고원의 허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탐방객이 지리산 둘레길 운봉~주천 구간중 남원시 가장마을과 노치마을 사이의 솔밭길을 걷고 있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남원시 주천면(14.3㎞·약 6시간)

    운봉에서 주천 구간은 지리산 둘레길의 대표적인 옛길이다. 이 구간은 백두대간을 지나며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또 6개 마을을 잇는 둑방길과 숲길은 옛 주천면에서 운봉읍 사람들이 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이다.

    운봉읍에서 출발을 했다. 운봉읍내를 지나 주천으로 향하게 된다. 운봉읍내는 꼭 70년대에서 그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는 2~3층의 낡은 건물들에는 이용원, 오락실, 양조장 등 옛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70년대 풍경을 지나면 다시 흙을 밟게 된다. 운봉까지 우리를 안내했던 람천의 둑방길과 만나는 것이다. 익숙한 둑방길을 걸으면 가장 먼저 행정마을을 만난다.

    행정마을은 200여년 된 서어나무 64그루가 모여 있는 울창한 서어나무숲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겨울철엔 잎이 진 채 뼈만 앙상하게 남은 서어나무숲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

    행정마을서 논둑길과 둑방길을 지나 1시간 남짓 걸으면, 가장마을. 이곳을 지나 덕산저수지를 끼고 야트막한 동산을 오르게 되는데, 그 속의 솔숲길이 이채롭다. 양쪽으로 늘어선 소나무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의 작은 오솔길을 내줬는데, 용틀임하듯 휘어지듯 감겨 오르는 듯한 모습이 신기하다.

    솔숲을 지나 돌을 쌓아 꼬불꼬불 만들어 놓은 논두렁길을 지나면 노치마을에 이른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다. 마을에서는 ‘갈재’라고 부른다. 마을을 둘러싼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요즘은 이곳이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마을로 알려져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 백두대간을 지나는 것을 알리는 비를 세워놓고, 길손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다. 노치마을은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위에 있어, 비가 내려 빗물이 왼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마을이다.

    노치마을을 벗어나 구룡치를 향하다 보면 작은 마을이 눈에 띄는데 바로 회덕마을이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아 옛 주민들은 억새를 이용해 지붕을 만들었던 마을이다. 마을에는 아직도 억새 지붕을 올린 2가구가 있다.

    회덕마을을 지나 작은 돌다리를 건너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곳은 주천면 내송마을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인데, 옛 내송마을 주민들이 장을 보기 위해 지나던 길이다. 넉넉잡아 2시간을 걸어야 하는 이곳 숲길은 볼거리가 많은 환상적인 코스다.

    길을 걷다 보면 돌로 탑을 쌓아 놓은 ‘사무락다무락’을 만난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사함을 빌고 액운을 막아 화를 없애고자 쌓아 올린 것들이다. 구룡치를 지나면 솔정자다. 20여 년 전만 해도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다가 고개를 오르기 전에 땀을 식히고 주천 들녘과 멀리 숙성치와 밤재를 바라보던 곳이다.

    이렇게 숲길 곳곳에서 만나는 풍경을 지나 산을 내려오면 내송마을이 나온다. 내송마을을 지나면 최종 목적지인 주천면에 이르게 된다.

    안영순 할머니가 팔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장터서 파는 순대국밥.

    ★ 길에서 맛난 풍경 '인월장날'

    인월-주천 구간의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바로 인월장이다. 조선시대 말부터 섰던 5일장인데 인월, 운봉을 비롯해 함양읍, 마천 주민들도 이용했던 시장이라고 하니 인근에서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3, 8일에 열리는데 운이 좋아 이때 인월면을 지나게 된다면 인월장을 구경할 수 있다.

    지리산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펼친 장인 만큼 지리산서 채취한 산나물과 약초 등이 주된 상품이다. 곶감도 가장 많이 팔리는 물건 중 하나였다.

    오전 9시부터 장이 시작되는데, 전을 펼치려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장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연출한다.

    마을사람들에게도 인월장은 소중하다. 때론 생계수단이 되기도 하고, 또는 마을 노인들에게는 소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오전 8시부터 큼직한 보따리를 끌고 나와 장사 준비를 하던 안영순(71) 할머니. 인월장터 근처서 혼자 사는 안 할머니는 장이 서지 않는 4일 동안 장에 내다팔 물건을 준비하느라 일상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

    할머니는 “(장에 내다팔) 무청도 말려야제. 도라지도 다듬어야 하고. 밭에서 딴 호두, 은행도 다듬다 보면 놀 시간도 없당께. 그래도 장날 준비를 하다 보면 심심치도 않고, 손주들 용돈도 줄 수 있어서 손을 놓을 수 없어”라고 웃었다.

    맛도 있다. 장터서 파는 순대국밥. 큼지막한 뚝배기에 한가득 담긴 뻘건 국물과 푸짐하게 담긴 순대, 고기는 장정 혼자서 먹기에도 벅찰 만큼 양이 많다. 그래도 쉽게 숟가락을 놓을 수 없다. 맛도 있을 뿐더러 아침 일찍부터 장에 나온 상인들의 허기진 배를 생각한 주인 양반의 넉넉한 정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이헌장기자 lovely@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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