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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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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분수(分數)와 구제역(口蹄疫)- 이덕진(창원문성대학 교수)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한 탐욕이 화 불러

  • 기사입력 : 2011-0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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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나라가 구제역 때문에 시끄럽다. 민심도 흉흉해서 어떻게 본다면 집단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극한의 공포가 갑자기 덮쳐올 때 빠져드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패닉(panic)이라 한다. 판(Pa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축과 수렵의 신이다. 상반신은 사람이지만 허리 아래와 뿔, 귀는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리를 갑작스럽게 내어서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두렵게 만든다. 패닉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이다.

    내가 사는 지역이 그나마 청정지역인 것에 안심하는 소인배 같은 이기심과 고약함을 탓하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구제역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에 관한 각종 궂은 소식은 끝이 없어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온난화와 같은 이상기후, 그로 인한 삶의 터전에 대한 위기감, 오존층의 파괴, 오존층의 파괴로 인한 수많은 질병 사례, 인간의 힘으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폭설, 홍수, 가뭄과 같은 각종 자연재해까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재앙은 인간 더 나아가 동물, 식물 등 가릴 것 없이 적용된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답은 고전(古典)에 있다.

    중국 고대의 성인 노자(老子)는 일찍이 법자연(法自然)을 설파했다. 성인의 말씀을 들어보자.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인간도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이 그 하나를 차지한다. 인간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욕심이 많은 것보다 죄악이 큰 것이 없고,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해악이 큰 것이 없으며, 얻겠다는 탐욕보다 죄의 근심이 큰 것은 없다. 만족할 줄을 알아서 그치는 사람만이 영원히 만족한다.”

    노자의 사상적 후계자인 장자는 제물(齊物)을 설파한다. 그에 의하면 도(道)는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져 버린 것이자, 천지 생성의 원인이며 이끌어 가는 원리”이다. 도는 깨어진 기왓장에도 더러운 똥 오줌에도 있어서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거나 의미가 없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선과 악, 미와 추, 나와 너 등의 차별을 한다는 것은 고약하고도 무의미한 일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자연과 내가, 더 나아가서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동물이,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인간에게 절대 자유가 보장되고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성인의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무서워할 줄 알고 본받고 따르라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모든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재앙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분수(分數)를 상실할 때 시작된다. 그래서 장자는 분수를 모르는 우리를 힐난하여 우화 조삼모사(朝三暮四)를 말한다. 옛날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원숭이를 좋아해서 많이 길렀다. 그런데 원숭이의 수가 늘자 먹이를 줄여야 했다. 그래서 원숭이들에게 “앞으로는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은 너무 적다고 화를 냈다. 이에 말을 바꾸어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고 하자 모두 기뻐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에 있다. 다시 말해서 생활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질에 있다. 우리가 배기량이 더 큰 자동차와 평수가 넒은 아파트를 계속 원하는 한, 다시 말해서 인류가 생활의 양을 크게 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그것을 발전이라 부르는 태도와 제도를 계속 견지하는 한, 생활의 질은 저하되어 갈 수밖에 없으며 재앙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비극은 요행히 이번의 재앙을 피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덕진(창원문성대학 복지학부 장례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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