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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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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사랑의 온도계’, 허참- 이선호(논설고문)

비리로 사랑 싸늘 … 그렇다고 ‘기부의 독’ 깰 수야 없지 않겠는가

  • 기사입력 : 2010-1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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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재정학에선 정부의 주요 역할 중의 하나로 재분배기능을 꼽는다. 현실적으로도 선진국일수록 이 기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우리 재정구조를 보더라도 내년 복지예산이 전체 예산의 30%에 가깝다. 그러나 세금만으로는 이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자선기부금이 그 구멍을 메워준다. 기부금은 세금과 같이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이라 기부자는 물론 수혜자의 효용도가 높다.

    문제는 기부금을 둘러싼 말썽이 잊을 만하면 터져나와 걱정이다. 한때 웬만한 기업들은 정부기관이나 언론 등의 이웃돕기 성금모금 경쟁에 손사래를 쳤던 적이 있었다. 실적쌓기에 나선 이들 기관의 반 으름장(?)에 해당 기업들은 모금액을 골고루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뒤탈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돈도 경조사비나 판공비로 빠져나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무분별한 자선단체의 폐단과 난립을 막고 기부의 일원화를 통해 모금된 기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민간에 의한 민간의 모금활동으로 지역주민들의 호응도 좋았다. 연말연시 정기 모금은 전국적인 협조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 사회복지시설의 프로그램을 심사해 모금액을 배분함으로써 ‘과학적 자선’이란 평도 나왔다.

    그런데 이 또한 성금유용 비리 등으로 기부행렬에 말뚝을 박는 꼴을 보였으니 말문이 막힌다. 사실 이런 비리 형태는 많은 공공기관들이 보여왔던 터라 국민들은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공동모금회는 다르다. 자선기부금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와 이를 운영하는 기관도 기부자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망이 크다.

    그동안 복지장사꾼들에 대한 비판은 심심찮게 나왔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선, 평등 등을 내세우면서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해 복지의 단물에 젖어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공동모금회도 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시설 등엔 ‘힘있는 기관’으로 비치기도 했다. 기부자들은 수탁기관과 담당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돈을 맡긴다. 그리고 자신이 낸 돈이 어려운 이웃이나 독거노인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흐뭇해한다. 공동모금회의 비리는 이런 믿음을 저버렸다.

    ‘사랑의 온도’가 싸늘하다고 한다. 지난해 이맘때 온도계 눈금이 쑥쑥 올라가던 것과는 딴판이다. 갑자기 닥친 한파 탓만은 아닐 거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연이어 터진 백혈병소아암협회 모 지부의 비리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이들의 돼지저금통 동전까지 손을 댔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올해 공동모금회가 내건 슬로건이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이어주세요’다. 오죽했으면 사랑을 이어달라고 했을까 싶어 안타깝다. 한번 잃은 기부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케 한다.

    그렇다고 ‘기부의 독’을 깰 수야 없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모든 제도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또 제도가 잘 굴러가려면 운영하는 사람과 궁합도 맞아야 한다. 공동모금회가 사람을 갈아치우고 제도를 보완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두고 볼 일이다. 바라건대 기부의 생명은 투명성이란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1원짜리 하나라도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얘기다. 담당 직원도 따뜻한 가슴과 소명 의식을 가진 이들로 채워야 할 것이다. 찾아보면 봉사가 생활화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공동모금회의 활동은 1월 31일까지 이어진다. 경남의 모금액은 37억원이다. 이 돈이 다 모여야 사랑의 물이 끓어 넘친다. 아직 초반이라 속단하긴 어려우나 경남인의 이웃사랑은 100도까지 데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얼마전 창원에서 있은 ‘사랑나눔 산타바이크 퍼레이드’는 그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이날 모금액은 공동모금회에 전달됐다.

    나눔과 배려는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자 ‘도움닫기’다. 술을 권하는 연말, 사랑 나누기를 권한다.

    이선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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