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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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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김 총리 내정자의 ‘패망론’- 이선호(논설고문)

지사때 ‘도청 망하는 법’ 역발상 제시 관심
이제 ‘대한민국 패망론’으로 국정 대비를

  • 기사입력 : 2010-08-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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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년 전 꼭 이맘때의 일이다. 당시 김태호 지사가 산하 공무원들에게 ‘경남도청 망하게 하는 법’을 과제물로 제시했다. 경남도가 이대로 가면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경남도청도 설 자리가 없다는 절박함에서였다. 제로베이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베이스나 네거티브베이스에서 발상을 전환하여 경남도정의 획기적인 발전방향을 찾아보자는 뜻이기도 했다. 망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망하는 방법으로 일하면 분명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김 지사의 ‘도청 패망론’은 엉뚱하다는 비난도 없지 않았으나 전국 행정기관에서 비상한 관심을 가졌고 국무총리실에선 벤치마킹을 할 정도였다.

    그런 김 전 지사가 국무총리로 내정됐다.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그의 행보를 지켜봐 왔던 도민들의 감회는 더 클 것이다. 거창의 조그만 마을에서 소 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30대에 경남도의원과 거창군수를 거쳐 마흔 살에 전국 최연소 도지사로 등극해 도정을 이끌어 오면서 그는 선후배를 스스럼없이 형님과 아우로 불렀고, 어르신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대했다. 특유의 친화력일 수도 있겠지만 도민들을 한 가족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김 내정자를 기억하는 것은 5년 전 ‘남해안시대’를 선언할 때의 일이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 한반도 지도를 뒤집어 걸고는 “남해안이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아닌, 동북아의 관문”이라고 선포했다. 구체적인 콘셉트도 없었고, 때문에 ‘구름 잡는 선거용’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40대 도백의 치기 어린 선언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해안 시대’는 이제 ‘동북아 글로벌 복합경제 중심지’로 육성하는 정부의 대형 프로젝트가 됐다. 남해안의 바다와 섬을 제2의 지중해로 개발하고 연안지역을 키워 수도권에 대응하는 경제축으로 발전시켜 나가게 된 것이다. 이는 경남도가 주도한 이른바 ‘상향식 정부 계획’이란 점에서 과거 각종 개발계획과도 차별화된다. 아직 미래진행형이지만 꿈 같은 이야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 내정자가 남다른 애착을 가지리라 믿는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거북선을 찾겠다는 김 내정자의 집념이다. 이 또한 이벤트성이 농후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거북선 찾기는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임이 분명하다. 1%의 가능성만 있다면 포기하지 않는 후손의 아름다운 도전인 것이다. 그가 총리로 내정된 배경의 하나도 젊은이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런 도전 정신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도지사 재임시절 과(過)도 있다. 성격이 모질지 못한 탓(?)에 손이 안으로 굽는 일이 적지 않았다. 앞으로 인준 절차 과정에 이런 저런 허물도 나올 것이다. 야당은 ‘견습 인턴총리’라는 악평을 내놓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한다면 1971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당시 45세)가 11대 총리로 임명된 이후 39년 만에 40대 총리로 국정을 맡게 된다.

    지금 김 내정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도청 패망론’을 되새겨 보는 일이다. 대충 이렇다. 여론과 인기몰이에 영합한 조직운용, 자기사람 심기로 파벌 조성하기, 관행이나 과거 사례 답습행정, 사업 우선순위보다 정치권과 타협 등 나눠먹기 추진, 일관성 없는 선심성 대형 프로젝트 남발 등이다. 통일과 외교, 안보 분야를 제외하곤 ‘대한민국 패망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망하는 법을 알면 대비를 할 수 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총리직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라고 했다. 김 내정자가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다는 성급한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임기 내내 국민을 섬기는 ‘만인지하’의 자세를 당부드린다. 대한민국이 망하는 길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선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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