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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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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김 지사와 야단법석- 이선호(논설고문)

  • 기사입력 : 2010-07-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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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관 도지사가 어제 취임식을 갖고 경남도정의 중심에 섰다. 오랜 기간 준비해 오면서 오른 자리라 감회가 남다를 듯하고 각오도 단단히 다졌을 법하다. 취임식장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눈도장을 찍기 위한 생판 모르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선거 때 짧은 인연을 구실로 잿밥에 더 눈길을 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밀려드는 축하 화환과 화분 대신 쌀을 받겠다고 한 것은 세간에 익히 알려진 김 지사다운 행동이다. 오늘만큼은 필자도 초를 칠 생각은 전혀 없다.

    김 지사가 지사직에 오른 것은 여러 가지 동인(動因)이 있겠지만 선거 과정에서 들었던 바로는 인상이 좋다는 것이었다. 인상이 좋다는 것은 시골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리면 믿음직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평가의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몸[體貌]·말씨[言辯]·글씨[筆跡]·판단[文理]이 그것이다.

    김 지사는 듬직한 체구에다 지겟짐을 진 경험이 많아 ‘도정의 무게’를 거뜬히 견딜 듯하고 유세 때 몸가짐이 바르고 말씨가 분명하다는 평을 받았다. 당선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방명록에 남긴 글씨를 보면 달필이다. ‘리틀 노’란 별칭에 비추어 사람이 중심 되는 사회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알 수 있고, 함께 골고루 잘사는 도정이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장관직을 거쳐 도백이 됐으니 머리에 쓴 감투가 커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각종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김 지사의 도정 구상은 ‘시군 도우미 도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선 시군에 힘을 실어 주고 도는 뒤에서 돕겠다는 것이고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뜻일 게다. 젊은 시절 남해군에서 이장직을 맡아 논두렁을 누비면서 체득한 경험이 바탕이 됐을 듯하다. 또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야권과 시민단체 등을 망라한 민주도정협의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도의회와의 향후 관계 정립은 차치하고, 우군을 만들겠다는 복안에다 한쪽으로 치우친 날개를 복원하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새가 비상하려면 좌우 날개가 온전해야 한다는 데 이의는 없다.

    김 지사는 당선 후 이런 저런 주문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을 것이다. 요구도 많았을 법하다. 사람이 귀가 두 개인 것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를 잘 가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래도 오늘 한 가지만 당부드린다. 한쪽 귀로 흘릴지라도.

    도민들이 김 지사를 선택한 것은 안정 속의 변화보다 변화를 바탕으로 한 혁신과 개혁을 원했다고 볼 수 있다. 혁신과 개혁 과정은 시끄럽기 마련이다. 여기서 야단법석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야단법석은 원래 불교에서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그 하나는 야외에 법단을 차려 놓고 하는 설법장인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 무려 300만명이나 모였다고 전해진다. 법문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법당 밖에 몰리다 보니 시끌벅적, 어수선할 수밖에 없고 오늘날 ‘야단법석’의 의미로 굳어졌다. 본래의 뜻대로라면 야단법석은 펴야 할 일이다. 또 하나는 야단법석(惹端法席)이다. 괜히 시비를 걸거나 생트집을 잡고 야료를 부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시시비비를 잘 가려 옳은 판단을 내린다면 나쁠 게 없다.

    김 지사가 도정을 이끌다 보면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나 때론 세찬 역풍도 맞을 수 있디. ‘야단법석을 떤다’는 말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정이 변신하려면 조용한 게 오히려 이상하다.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간에 김 지사의 간(肝)이 ‘두 관’은 될 거라는 우스개가 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야단법석을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멀리 내다보면서 간 큰 판을 펴시라. 그리고 ‘4년 후’를 연연하지 마시라.

    이선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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