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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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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22) 통영 홍도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 일출에 감탄사 절로 “아~”
사람의 발길 끊긴 외딴섬 ‘괭이갈매기 천국’

  • 기사입력 : 2010-06-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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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괭이갈매기 천국인 통영 홍도 일출. 어둠을 밝히는 붉은 해가 서서히 솟아오르자 괭이갈매기들이 먹잇감을 찾아 바다를 누비고 있다. /이준희기자/

    홍도등대를 배경으로 괭이갈매기들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까아하~ 까아하~깍깍깍~, 까아하~ 까아하~깍깍깍”

    하얀 갈매기들이 온 섬을 뒤덮은 괭이갈매기들의 천국 ‘홍도’(鴻島·천연기념물 제355호·9만8380㎡).

    동경 128도, 북위 34도, 통영의 최동남단(最東南端)에 위치한 ‘홍도’는 통영항에서 50.5km가량 떨어진, 뱃길로 1시간30여 분이 걸리는 머나먼 외딴 섬이다.

    괭이갈매기들의 번식지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335호로 지정된 ‘홍도’에는 지금 알에서 깨어난 회갈색의 괭이갈매기 새끼들이 어미를 따라 다니며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바위섬 곳곳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알을 품고 있는 어미 갈매기들도 만날 수 있다.

    ‘고양이(괭이)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낸다’하여 이름 붙여진 괭이갈매기는 하늘을 떼지어 날아다니며 암초와 풀밭에서 집단으로 서식한다. 엷은 회갈색에 짙은 갈색과 잿빛 반점이 있는 알을 2~4개 낳은 후 40여일 생활하다 둥지를 떠나며 갈매기 중 유일하게 흰색의 꼬리를 가로지르는 검은색의 넓은 띠가 있고 다 자란 것은 머리, 목, 배는 흰색이며, 부리는 진황색, 부리 끝은 적색과 검은색의 반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붉은 홍(紅)을 쓰는 전라도 홍도(紅島)와 달리 큰기러기 ‘홍’(鴻)자를 쓰는 통영 홍도(鴻島)는 4~8월이면 산란철을 맞은 괭이갈매기들이 섬을 하얗게 뒤덮어 장관을 연출한다.

    10만 마리에 이르는 괭이갈매기들이 일제히 울어대면 그 소리가 바람과 파도를 타고 저 먼 바다에서 조업 중인 어부들의 귓가에도 와 닿는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고이 간직한 ‘홍도’는 일명 ‘알섬’으로 불리는데 괭이갈매기들이 알을 많이 낳아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허용됐으나 알을 약에 쓰려는 사람들의 횡포와 일부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자연훼손으로 10년간(2001.3~2011.3)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거제 남부면 저구리 대포마을에서 낚싯배를 이용해 40여 분 만에 도착한 홍도는 여명이 밝기 전인데도 괭이갈매기들의 울음소리로 요란하다. 잠시후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서 섬을 붉게 물들이는 해가 서서히 떠오르며 ‘홍도 일출’의 장관을 이룬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감탄사가 절로 쏟아진다.

    하지만 코끝을 자극하는 괭이갈매기들의 배설물 냄새에 첫발을 내디딘 섬의 인상은 그리 개운치 않다. 마치 ‘새들의 전쟁터’에 온 느낌이랄까… 생태계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홍도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 주변 곳곳에는 깨진 알과 말라 죽은 새끼들이 널려 있어 발을 옮겨 놓기가 힘들 지경이다.

    계단 난간에 일렬로 늘어선 괭이갈매기들.

    괭이갈매기가 알을 보고 있다.

    홍도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 주변 곳곳에 깨진 알과 말라 죽은 새끼들이 널려 있다.

    괭이갈매기들이 비행 중에 쏟아내는 배설물을 피하기 위해 비옷으로 단단히 무장을 한 채 계단을 오르자 불청객의 침입을 알리기라도 하듯 괭이갈매기들이 일제히 울어댄다. 계단 난간에 일렬로 ‘쭉~’ 늘어선 괭이갈매기들의 모습이 마치 섬을 지키는 초병들 같다.

    가파른 절벽은 물론 섬 꼭대기 편평한 곳까지 섬 전체를 괭이갈매기들이 차지하고 있다. 홍도엔 나무가 거의 없다. 바위와 돌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괭이갈매기들의 배설물로 뒤덮인 섬에 나무들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풀숲과 길, 절벽 돌 위 등 곳곳에서 갓 부화한 회갈색의 괭이갈매기 새끼들이 눈에 띈다. 아직 솜털이 채 빠지지 않은 새끼들은 어미 품에 바짝 붙어 졸졸 따라다닌다.

    홍도는 외부인의 발길이 차단돼 괭이갈매기들이 서식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개체간 경쟁이 치열해 어린 새끼들이 죽는 일이 허다하다.

    괭이갈매기들의 수가 워낙 많아 서식공간이 부족한 홍도는 개체 서식지 간 거리가 약 30~40cm가 유지될 때는 평화롭지만 서식 영역을 조금이라도 침범할 경우 새끼든 어미든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공격한다.

    그래서 바위 곳곳에 머리에 피를 흘리며 쪼그리고 앉은 새끼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영역다툼이 괭이갈매기들의 일상인 것을 보면 알에서 깨어나 서식공간을 지키는 것부터가 어쩌면 어린 새끼들에게는 생존의 1차 관문인지도 모른다.

    괭이갈매기들이 영역다툼을 하고 있다.

    괭이갈매기 새끼.

    괭이갈매기 알.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신경이 예민해진 일부 괭이갈매기들은 낯선 기자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듯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와 머리를 쪼아댄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괭이갈매기들의 배설물을 피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수시로 쏟아내는 배설물을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괭이갈매기의 수가 워낙 많아 어쩔 도리가 없다.

    한걸음 한걸음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 지 20여분, 섬 정상의 하얀색 건물에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진 ‘홍도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등대는 곳곳이 녹슬고 페인트가 벗겨져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홍도는 원래 남해안과 대한해협을 오가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등대 섬이었다. 1906년 3월 첫 불을 밝혔으니 벌써 104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1904년 인천 팔미도 등대와 1905년 군산 옹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불을 밝힌 홍도 등대는 2차 대전 폭격으로 소실됐으나 1954년 11월 복구되면서 유인등대로 운영됐다. 이후 1996년 10월 해양수산부의 지침에 따라 무인화돼 원격제어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괭이갈매기들이 홍도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100여 년 동안 남해바다를 지키며 선원들의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묵묵히 담당해온 홍도 등대. 칠흑같은 밤이면 번쩍이는 섬광으로, 안개가 짙은 날이면 무신호(霧信號·안개, 눈, 비 따위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사용하는 음향 신호)를 울리며 선박들을 안전하게 인도했다.

    한산면誌에 따르면 홍도는 대한해협을 끼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제시대에는 해군이 1개 중대 병력을 주둔시켜 포진지를 구축하고 이 일대 바다의 경비를 담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섬의 곳곳에서 포진지를 구축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섬 정상에 올라서니 거센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가 연출된다. 쾌청한 날이면 저 멀리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고 하지만 이날은 바다를 뿌옇게 뒤덮은 운무로 대마도를 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며 ‘언제 다시 이 섬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새끼들의 비행연습이 끝나는 8월 말쯤이면 괭이갈매기들은 홍도를 떠나 넓은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수많은 위험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의 특혜를 맛보면서….

    ☞ 홍도 가는 길

    홍도는 괭이갈매기의 번식지 보존을 위해 2001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섬에 내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배편을 이용한 섬 주변 관광투어는 언제든 가능하다. 다만 변화무쌍한 바다 날씨로 인해 기상변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배편은 거제 남부면 저구리 대포마을 해양낚시리조트(대표 정기화·☏011-563-9744 )에서 구할 수 있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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