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19) 통영 오곡도

발길 닿지 않은 곳곳에 살아숨쉬는 태초의 순수
마을 텃밭엔 바닷바람 맞고 ‘방풍’이 자라고…

  • 기사입력 : 2010-05-13 00:00:00
  •   

  • 통영 오곡도 까막자리 마을서 내려다본 바다. 맞은편에 보이는 섬이 비진도이다./이준희기자/

    오곡도 전경.

    까마귀 섬으로 유명한 ‘오곡도’(烏谷島).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을 담은 비진도와 용초도, 학림도(새섬)와 연화도 사이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내민 ‘오곡도’(46만3176㎡·20명 14가구)는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 제대로 된 방파제조차 하나 없는 자그마한 섬이다. 하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섬 곳곳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혜의 비경을 속에 품고 있다.

    예부터 섬에 까마귀가 많아 까마귀 오(烏)자를 사용했다는 설과 섬의 형세가 하늘을 나는 까마귀를 닮아 오(烏)자를 사용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며, ‘오실이 강정 쉰두 강정’(오곡도 해안 바위와 바위 사이의 골이 52개)이라고 할 만큼 많은 비렁 계곡인 강정이 있다 하여 계곡 곡(谷)자를 따서 ‘오곡’(烏谷)이라 하였다는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원래 토박이 지명으로는 섬에 오소리(족제비과)가 많이 서식했다 하여 ‘오시리’라 불렀다고 한다.

    ‘오곡도’(烏谷島)는 통영 산양읍 척포·마동마을에서 뱃길로 10여 분 거리의 가까운 섬이지만 개발은 물론 정기선이 없을 정도로 낙후됐다.

    섬을 한 번 가려면 척포·마동마을에서 1인당 4만원(왕복)의 뱃삯을 지불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세상의 번뇌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과 벗하고픈 도시인들에게는 명상의 섬이기도 하다.

    앞면(애민: 앞쪽에 있는 마을)과 옛날 동화분교가 있던 까막자리(손골: 좁은 골짜기라는 방언) 2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진 오곡도는 한때 70여 가구와 200여 명의 마을 주민, 분교가 있을 정도로 풍요로웠지만 이제 모두 떠나고 10여 가구만이 남았다. 실제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은 10명 안팎이다.

    마동마을에서 낚싯배(타이슨Ⅱ)를 이용해 오곡도 까막자리 마을 입구에 이르자 지게에 짐을 한가득 짊어진 마을 주민이 조심스레 발을 내디디며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다.

    주민은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어서 오이소, 어디서 왔능교, 섬에 별로 볼 것도 없을긴데 …허허” 하며 외지인의 섬 방문을 웃음으로 맞는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란 김금찬(왼쪽)씨와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손진태씨가 섬 자랑을 하고 있다.

    앞면마을로 들어서는 가파른 계단.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란 김금찬(58)씨. 한평생 바다만을 바라보며 생활해 온 그이기에 이제 바다가 지겨울 만도 한데 여전히 바다가 좋단다. 그래서 그는 섬을 못 떠나고 있단다.

    마을로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급경사를 이룬 계단을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외지인의 질문에 김씨는 “절을 열두 번은 해야 마을에 오를 수 있다카이. 이제 시작인데 벌씨 지치모 되겄소”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답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 건너 맞은편의 비진도는 벌써부터 여름이 그리운 듯 하얀 백사장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우리를 유혹한다.

    거센 바람을 견디도록 두껍게 세워진 돌담.

    거센 바람에 견디기 위해 두껍게 세워진 돌담은 섬마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담쟁이가 둘러친 돌담 사이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된 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마을이 텅빈 듯한 느낌이다. 모두들 어디로 갔는지…, 쉽사리 주민을 만날 수가 없다. 어쩌다 마을 주민을 만나도 원주민들이 아닌 외지인들이다.

    마을 중턱의 양지바른 곳에서 봄햇살을 즐기던 손진태(73·서울 마포구)씨는 10여 년 전 이곳에 낚시하러 왔다가 오곡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예 이곳에 터전을 마련했다. 1년 중 2개월가량을 섬에서 보내는 그는 이번엔 부인과 함께 섬을 찾았다.

    그는 “섬에 오면 공기도 좋고, 내가 직접 내 손으로 키운 유기농 채소도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아내의 우울증 치료에 큰 도움이 돼 최고다”고 말한다. 또 “섬에서 나는 쑥으로 국 끓이고 남은 쑥으로 물 끓여 세수하고 머리도 감으면 화장품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며 그의 섬 예찬론이 끊이질 않는다. 다만 어려움이 있다면 섬을 오가는 배편이 없어 올 때마다 배를 대절해야 하는 점이란다.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육지에 나가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는 섬에 빈집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한다. 섬을 이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외지인들에게 개방해 이들이 빈집을 수리하고 개발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섬주민들은 집을 수리하고 섬을 개발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마을 뒤편 노지에 자란 방풍. 주민 김금찬씨가 잡초를 뽑고 있다.

    마을 뒤편 넓은 노지에는 오곡도 특산물인 ‘방풍’이 자라고 있다. 여러해살이인 방풍은 한방의 약재로 많이 쓰이는데 중풍을 예방하고 감기와 두통, 발한과 거담 치료에 효과가 탁월하단다. 그래서인지 통영시장에서 오곡도 ‘방풍’을 내놓으면 서로 사려고 난리가 난단다. 해풍을 맞고 자란 방풍은 쌉쌀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과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나물로 해먹으면 특유의 향과 아삭한 맛으로 머리까지 맑게 해 줘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향기와 감칠맛이 우러난다.

    40년 전만 해도 오곡도 섬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그래서 까막마을에는 학림국민학교 동화분교가 있었다. 하지만 섬 사람들이 점차 줄면서 18년 전 분교는 폐교되고 지금은 명상수련원이 들어섰다. 마을주민 김씨는 “2002년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장휘옥씨와 김사업씨가 속세의 인연을 끊고 오곡도로 들어와 분교를 리모델링한 후 ‘오곡도 명상수련원’을 세웠다”고 한다. 참 기이한 인연들이다.

    오곡도 산 정상에 올라서니 주변이 온통 섬들로 가득하다. 저 멀리 국도, 소지도, 구을비도를 비롯해 좌사리도, 연화, 욕지도, 노대도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비진도와 장사도, 가왕도가 눈에 들어온다. 다도해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순간이다.

    두 마을을 오가는 오솔길. 텃밭이었던 곳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까막자리 마을에서 앞면 마을로 가는 숲길은 정겨운 오솔길이다. 오른편의 바다를 끼고 오솔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솔길을 따라 걷기를 20여 분 남짓, 저만치 주황색 지붕이 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그 앞에 금줄이 쳐진 당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벌써 다 왔나?’ 오솔길을 걷는 재미에 빠져들 무렵 벌써 마을 입구에 이른다. 마을은 곳곳이 폐가다. 사람들이 사는 곳보다 빈집이 더 많은 것 같다.

    제주 고씨 집성촌인 앞면마을은 주민들이 대부분 떠나고 마음씨 좋은 마을 이장이자 어촌계장, 우편배달부 등 1인 3역을 담당하고 있는 고정옥(64)씨 부부와 고씨 종손집이 외지인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싫어 섬으로 다시 돌아온 고기복(48)씨 등 서너 명만이 남아 있다.

    마을 중앙에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샘의 물이 마르는 법이 없다는 것이 고기복씨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은 두레박으로 4~5m 아래의 물을 퍼 올려야 하지만 예전엔 비 온 다음 날 우물에 가면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고 수질도 맑고 깨끗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떠난 우물가는 휑한 분위기다. 우물은 덮여 있고 물은 퍼내지 않아 뿌옇게 변해 있다.

    일주일에 두 차례 바다 건너 뭍(척포 마을)으로 우편물을 가지러 나가시는 이장님이 1시간 여 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고 이장은 “예전 오곡도는 집집마다 노 젓는 배(전마선)가 있을 정도로 생활이 넉넉하고 먹고살 만한 섬이었는데 지금은 산양읍에 속한 30개의 유인도 중 가장 낙후된 섬으로 변했다”며 “마을 이장 자리도 지난해 일을 맡아 하시던 분이 돌아가시면서 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 이장은 갈수록 줄어드는 섬사람들로 이래저래 고민이다.

    오곡도는 다른 섬과 달리 배들이 거친 파도를 피할 수 있는 긴 방파제도 없다. 파도가 워낙 거세 방파제가 버텨나질 않는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마을에서 하나뿐인 이장님 배는 육지로 피항을 떠나야만 한다.

    오곡도 산 정상에서 본 몽돌해변.

    마을 언덕 너머 몽돌 밭은 오곡도의 숨겨진 비경, 둥글둥글한 몽돌과 모나지 않은 큰 바위들이 오곡도의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어 섬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오곡도는 통영의 여느 섬들보다 이름난 곳도 큰 볼거리도 없다. 내세울 것이 있다면 300년은 족히 된 동백나무 군락과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다.

    ☞가는 길

    오곡도는 육지에서 가까운 섬이지만 섬으로 가는 정기여객선이 없다. 때문에 오곡도에서 가장 가까운 통영 척포·마동 마을에서 낚싯배를 이용해야만 한다. 배편 이용료는 왕복 4만원. 척포 타이슨 피싱클럽(☏ 648-5200).

    ☞잠잘 곳

    섬에는 제대로 된 민박집이 없다. 하지만 인심 좋은 마을 이장(고정옥 ☏ 011-9539-1568)께 부탁하면 하룻밤은 묵을 수 있다. 대신 먹을 것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