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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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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동피랑에서 희망을 보다- 이덕진(창원전문대학 장례복지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0-04-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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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섬진강 나들이를 하였다. 섬진강은 유장(悠長)하여 황홀하였고, 하동에서 화개를 지나 구례까지의 벚꽃 길은 별천지(別天地)라! 이 세상 같지 않아서 꿈 같기도 환영(幻影) 같기도 하였다.

    길을 돌려 통영으로 향한 것은, 비록 가난한 서생(書生)의 몸이기는 해도, 봄에 ‘도다리쑥국’ 한 그릇을 먹는 사치(奢侈)도 부리지 못하고 계절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 까닭이다.

    통영 해안가에 있는 조그만 식당의 주인은 웃음이 여전하여서 반가웠다. 여린 쑥은 향기로웠고, 도다리의 살은 부드러웠으며, 소주는 입에 달았다.

    돌아오기가 아쉬워 통영 해안가를 서성이는 중에 동쪽 산등성이 근처에 담벼락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벽들에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 언젠가 들었던 ‘동피랑’이라는 말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동피랑이라는 말은 ‘동쪽 벼랑’이라는 말의 경상도 방언인데, 말 그대로 통영의 달동네로서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하여 시에서 철거하기로 하였는데, 뜻있는 이들이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명소가 되고 마침내 시가 계획을 취소하고 보존하기로 하였다는 바로 그곳이 아니던가!

    그래서 가보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은 숨이 턱에 차도록 가팔랐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골목길은 낡았고 어두웠으며, 10여 평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작고 낡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높은 산등성이 위로는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 한겨울 같았고, 허리가 많이 굽은 누추한 차림의 할머니 한 분은 대문 앞 공터에 연탄재를 내다버리고 계셨다.

    “요즈음에도 연탄을 때는 가정이 있구나!”라는 놀라는 감정 아래에 비친 동피랑의 모든 풍경은 황량하고 남루하였다.

    그런데 나는 놀랍게도 그곳에서 모든 담벼락들이 새옷을 갈아입었거나 입는 모양을 목격하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차게 부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담벼락에 붙어 서서 그림들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신명(神明)이 가득한 채 웃고 떠들고 놀고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붓이 가는 길에 따라 동피랑의 담벼락은 신통(神通)하고 묘용 (妙用)하게도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며, 물고기가 되어서, 극락(極樂)과 정토(淨土)가 되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마법을 거친 동피랑은 봄 하늘 아래, 남루함은 간곳이 없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앗! 하고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저 무모한 노동! 온 천지가 모두 돈을 찾아서 헤매고, 모든 젊은이들이 자본에 ‘간택(揀擇)’당하고 ‘하청(下請)’당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탐욕의 시대에, 이 젊은이들은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네들이, 저 무모해 보이는 노동들이, 마침내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져 올리기 위해서 미래세계에서 우리에게 보내진 전사(戰士)일 것이라는 강한 느낌을 가졌다.

    저 ‘무모함’이 모이고 모여, 강물처럼 흐르고 불꽃처럼 타올라서, 마침내는 ‘번듯한 세상’을 이루리라.

    동피랑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젊은이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섬진강변에서 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두 다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심하게 부끄러웠다.

    젊은이들의 찬란함에 비하면 섬진강변의 만개한 벚꽃은 오히려 남루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이덕진(창원전문대학 장례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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