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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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⑦ 통영 용초도

봄이 오는 섬마을엔 찰랑찰랑 미역이 바닷가서 춤추고…
작아서 더 깊고 슬픈 역사의 상처

  • 기사입력 : 2010-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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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용초도 호두마을에서 용초마을로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 길게 늘어진 미역이 해풍을 맞으며 말라가고 있다. /이준희기자/

    통영여객선터미널은 이른 아침부터 섬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낚시꾼, 공사장 인부, 여행객 등 여객선 출항 시간을 묻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오전 7시, 섬누리호가 통영항을 출발하자 바다랑호, 한려페리호도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섬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파도가 예사롭지 않다. 거센 바람에 파도가 섬누리호의 창문을 덮친다.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다. 변덕스런 바다 날씨는 찾는 이의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통영항을 벗어난 지 30여 분 만에 용초도 용초마을에 닿은 섬누리호는 다시 5분여 거리의 호두마을로 향한다.

    한산도와 비진도 내항마을 사이의 작은 섬 용초도(龍草島·66만5973㎡·71명 47가구)는 에 용의 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고, 나무보다 풀이 많아 용초도라 불렸다고 전하며 ‘용초마을’과 ‘호두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바다 한가운데 떠오른 용이 승천(昇天)하기에 앞서 푸른 물결 넘실대는 바다 위를 푸른 물굽이를 가르며 꿈틀거리며 헤엄쳐가는 듯한 느낌이다. 용초도는 본래 거제군 둔덕면에 속했으나 1914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영군 한산면으로 편입됐다.

    호두마을 뱃전에 이르자 어민들이 밤새 작업한 미역을 뭍으로 내보내기 위해 수송선에 옮겨 싣는 작업이 한창이다.

    호두마을 미역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용초도의 특산물이다. 배 한가득 미역을 실은 신성호(선장 정한정·59)도 작업한 미역을 옮겨 싣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추위를 막기 위해 얼굴은 물론 온몸을 작업복으로 완전무장했지만 살며시 드러난 정한정 선장의 미소가 정겹다. 정 선장은 “새벽 3시부터 미역 작업을 했는데 16광주리(1광주리 60kg가량)밖에 채우지 못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정 선장은 한 광주리를 더 채우러 잠시 바다에 나갈 텐데 같이 가고 싶으면 얼른 옮겨 타란다. 배로 5분여 거리의 미역 양식장은 마을에서 가깝지만 오늘은 바람이 거세 작업을 하기가 만만찮다.

    통영시 한산면 용초도 호두마을.

    몽돌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호두마을 뒷등 해변.

    바닷속으로 길게 뻗은 굵은 줄을 잡아당기자 치렁치렁 이어진 미역줄기가 밧줄을 따라 ‘쑥’ 드러난다. 길이가 긴 미역은 1m가 훨씬 넘어 보인다.

    정 선장과 그의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미역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칼로 자른 후 광주리에 담는다.

    금세 작업을 끝낸 정 선장 부부는 다시 마을로 향한다. 서둘러야 통영·마산 등 각지에 보내줄 미역을 제시간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미역 내음이 온통 마을을 뒤덮는다. 마당 앞 건조대는 물론, 담장, 자갈밭, 지붕 등 곳곳에 미역이 널려 있다.

    마을 맞은편 방파제에는 조금 전 입항한 동광호(선장 정한견·61) 정한견씨 부부가 광주리에 담긴 미역을 크레인을 이용해 리어카에 한가득 담아 싣고 있다. 집 앞마당 건조대로 옮겨 미역을 말리기 위해서란다.

    호두마을 미역은 바다에서 바로 건져낸 미역을 바로 뭍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이처럼 해풍에 말려 건어물에 내다 팔기도 한다. 해풍에 말린 호두미역은 고유의 맛과 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뭍에서 아주 인기가 높다.

    용초도 호두마을.

    호두마을 바닷가에서 주민이 김을 채취하고 있다.

    호두마을 강석재 이장은 “용초도 호두마을의 미역이 맛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청정해역의 바다와 한산도와 비진도, 죽도로 이어지는 조류의 원활한 소통으로 산소 공급과 먹잇감이 풍부해져 맛도 좋고 영양가가 높은 것 같다”고 자랑한다.

    호두마을 어촌계에서 관할하는 미역어장은 24ha가량, 마을 어촌계원 68명 중 20명만이 미역 작업을 하고 있다.

    강석재 이장은 “미역 작업을 하려면 일단 미역을 뭍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송선은 필수이고 그 밖에 작업선, 어구 등 부대비용이 1억원가량 소요돼 섣불리 덤비지 못한다”며 “어민들이 새벽 2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하루 14시간가량을 바다에서 작업하는데 그에 비해 소득은 적은 편이다”고 말한다.

    용초도 호두마을의 미역 작업은 보통 11월에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진다.

    호두마을 뒷등 해변은 바다와 몽돌,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마을 뒤 해안을 따라 길게 세워진 옹벽은 지난날의 아픔을 전하며 묵묵히 버티고 있다.

    1959년 태풍 ‘사라호’ 때 바닷물이 마을을 덮쳐 13명이 숨지고 60여 채의 가옥과 23척의 배가 전파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로 인해 마을에서는 2년여에 걸쳐 호안축조공사를 했으며, 1990년에는 통영군의 지원으로 철근 콘크리트로 된 옹벽공사를 완공했다.

    마을 선착장에서부터 해안선을 끼고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환상적이다.

    해안로를 따라 세워진 건조장에는 해풍을 맞으며 말라가는 미역이 줄줄이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다도해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길을 따라 15~20분 정도 걷다 보면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가 나온다.

    용호분교 언덕을 지나 내리막길로 다시 접어들면 용초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강한 바람 때문인지 마을은 조용하다.

    용초마을에 남아 있는 6·25전쟁 포로수용소 흔적.

    용초마을은 6·25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952년 5월부터 1954년 말까지 약 3년간 미군 1개 대대와 국군 1개 대대가 용초마을에 주둔하면서 약 2000명의 북한 공산군 포로를 수용했던 포로수용소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미군들은 마을 주민들을 인근 한산도, 비진도, 죽도 등으로 강제로 이주시킨 후 주민들이 살던 가옥 100여 채를 불사르고 불도저와 트럭 등으로 논밭을 짓뭉개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길을 내고 시멘트와 돌 등으로 거대한 포로수용소를 세웠다.

    포로수용소는 용초마을 세 구역으로 나눠져 큰몰(큰마을)과 제싯골(작은마을), 그리고 재너머 논골에 철조망을 둘러쳐 포로들을 가두었다. 제싯골 왼쪽 언덕배기에는 수용소의 우두머리를 비롯한 장교들 막사와 중요 군장비, 시설물 관리 건물 등이 세워졌다. 한 구역에 7~8개의 수용소가 들어 있었으며, 한 개의 수용소에는 100명의 포로들이 수용되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김남조(70)씨는 당시 13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처참했던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 노인은 “그런 기계(불도저)가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제. 양놈들이 며칠 전부터 바다 수심을 재고 섬의 물 사정을 알아보더니 어느 날 갑자기 큰 배(LST)를 아랫마을에 대고는 막무가내로 마을 사람들을 쫓아내고 기계로 마을을 까뭉개 버렸어. 생계를 잃은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일부는 친척집으로, 일부는 인근 비진도로 피난을 갔지”라며 아픈 기억을 회상한다.

    김 노인은 “용초마을에 수용된 포로들의 옷에는 ‘CI’라는 영문 표시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들은 북한 포로들 중에서도 ‘악질 포로’들인 걸로 기억한다”며 “수용소에서는 수시로 폭동이 일어나 총성이 울려퍼졌고 최루가스가 하늘을 뒤덮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을 뒷산의 중턱에 오르면 당시 사용됐던 급수시설과 포로수용소 막사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용초마을 김재덕 이장은 “6·25전쟁 당시 용초마을 주민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집을 뺏기고 섬에서 내쫓기는 아픔을 겪은 만큼 이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며 “용초마을 포로수용소 등을 관광자원화해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하루 2회뿐인 정기여객선도 증설해 자유롭게 섬을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추위도 피할 겸 찾은 용초마을 경로당에는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십원짜리 고스톱판을 벌이고 있었다.

    “추운데 아랫목으로 오시게. 차 한 잔 마시면서 배를 기다리면 금세 올거야”라는 한 할머니의 정감 어린 말투에 어느새 몸이 사르르 녹아든다.

    돌아오는 뱃길이 오늘따라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할머니의 따스한 차 한 잔 때문일까.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다.

    영화 ‘국화꽃 향기’ 촬영지 한산초 용호분교

    아름다운 통영 바다와 저녁노을 환상 풍경이…

    용초도의 용초마을과 호두마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는 영화 ‘국화꽃 향기’(감독 이정욱, 주연 故장진영·박해일)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단층으로 지어진 하얀색 건물과 운동장의 그네, 시소 등 놀이기구와 바다를 바라보며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간이의자, 그리고 청정한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남해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 가히 낭만적이다.

    특히 운동장 앞 모래사장은 금세라도 빨려들 듯 푸름을 더하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2003년 개봉한 영화 ‘국화꽃 향기’는 베스트셀러인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멜로물이다.

    대학동아리 북클럽에서 만난 연상의 선배 희재(故 장진영)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자 인하(박해일)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희재가 인하를 데리고 하계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가던 섬 용초도에서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던 분교가 바로 용호분교이다.

    아이들의 장난으로 물에 빠진 희재를 인하가 구해내던 장면이 아롯이 새겨진 작은 분교이다.

    용호분교는 태풍 ‘매미’로 완전 파괴됐지만 주민들의 요구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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