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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③ 통영 추도(楸島)

아기자기 해안선 따라 꾸덕꾸덕 물메기 말라가고…

  • 기사입력 : 2010-0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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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도 미조마을의 한 아낙네가 물메기를 말리고 있다. /이준희기자/


    통영 욕지도행 여객선에서 바라본 추도 일출. /김승권기자/


    “한 마리 더 잡을라 카다가 볼때기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카이. 얼마나 춥는지 죽으면 죽었지 통발을 못 옮기것데!” 통영시 산양읍 추도 미조마을 앞 물메기 작업장이 동네 아낙네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왁자지껄하다. 새벽 3시 출항해 이날 오전 9시30분께 입항한 명진호(선장 심화섭·51)가 전날 쳐 놓은 통발에서 60여 마리의 물메기를 풀어 놓자 아낙네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둘러앉아 능숙한 솜씨로 물메기를 손질한다.

    통영항에서 뱃길로 12km 지점에 위치한 ‘추도’(164만3990㎡·67가구 142명)는 예부터 ‘물메기’로 유명한 섬이다.

    미륵도 서남쪽 사량면 하도와 욕지면 노대도 가운데 자리 잡은 추도는 ‘희망봉’을 중심으로 대항, 미조, 샛개, 물개 등 4개 마을이 있지만 물메기는 주로 미조마을에서 많이 잡는다.

    섬의 형상이 농기구인 가래처럼 생겼다고 해서 옛지명이 ‘가래섬’인 추도(楸島). 추도 어민들은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인 겨울이 오면 물메기를 잡고 말리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11월 중순께부터 시작해 다음 해 1월 말까지 많이 잡히는 겨울철 별미인 물메기는 추도 어민들에게 1년 농사인 셈이다.

    그래서 추도 미조마을은 이맘때쯤이면 물메기가 온 마을을 뒤덮어 ‘물메기 꽃’이 핀다. 지붕에도, 담장에도, 길거리에도…, 물메기 판이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귓불을 때리지만 아낙네들은 능수능란한 솜씨로 물메기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들어낸 후 편을 갈라 물에 담근다.

    3~4명의 아낙네들이 60여 마리의 물메기를 손질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여 분. 물메기 손질이 마무리되자 명진호 선장인 심씨가 “수고했네요. 가져가 잡수소”라며 한 마리씩 건넨다.

    동네 아낙네들은 물메기를 손질해주는 대가로 많이 잡힌 날에는 2~3마리, 적게 잡힌 날은 1마리 얻어 집으로 가져가 반찬과 국거리용으로 사용한다.

    “추도 물메기가 왜 맛있느냐”고 묻자 아낙네들은 “추도 물메기가 전국에서 제일이제, 팔딱~팔딱 뛰는 물메기를 현장에서 바로 손질해서 산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자연수에 3~4차례 씻어 내면 하얀 살을 드러낸 물메기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아닌가베. 그런 다음에 햇볕과 해풍이 좋은 양지에 말리면 그 맛이 끝내준다 아이가.”

    동네 아낙네들의 추도 물메기 자랑이 끝이 없다.

    미조마을에서 물메기를 잡는 어민은 모두 7가구. 예년 9가구에서 2가구가 줄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메기 조황이 점차 줄어들자 물메기를 잡는 어민들도 줄고 있는 추세다. 특히 올해는 물메기 조황이 좋지 않아 어민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 선장은 “올해는 물메기가 영 잡히질 않아. 하루 평균 150~200마리 정도는 잡아야 현상 유지는 하는데…. 기름값, 인건비 등 경비 빼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어, 죽만 먹고 살아야 할 판이다”며 긴 한숨을 내뱉는다.

    추도 어민들이 물메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빠뜨리는 통발은 평균 3000~5000여 개.

    예년에 많이 잡힐 때는 한 척의 배에서 하루 500~700마리도 잡았는데, 요즘은 하루 100마리 잡기도 힘겹다. 최근에는 통발에 잡힌 물메기를 훔쳐가는 밤손님(?)도 생겼다.

    “나무여 부근 대략 300개의 통발에서 15~20마리는 잡았는데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어. 밤손님이 다녀갔다는 얘기지.”

    어민들은 이래저래 힘들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돌담길 사이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바람이 많은 탓일까, 어떤 곳은 돌담의 높이가 사람의 키보다 높다.

    수령이 500년은 된 듯한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345호)는 주변의 돈나무, 느티나무, 보리밥나무와 함께 마을의 방풍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추도는 다른 섬 지역과 달리 논농사가 성행했던 섬이다. 풍부한 수원 탓에 산 중턱 아무데서나 논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섬 어느 곳에서도 논농사 짓는 곳을 찾아볼 수 없다.

    “몇 해 전부터 논농사는 포기했어. 섬에 소를 키우는 집도 한 집밖에 없고. 섬은 경운기가 다닐 수도 없어서 오로지 소와 지게만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지게를 짊어질 젊은 사람이 있어야지.”

    그래서 추도마을은 논농사를 포기했단다.

    추도 미조마을의 명물은 마을 앞바다의 ‘용머리’. 지형이 용머리처럼 생겨 이름 붙여졌단다.

    용머리는 마을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5대째 추도 미조마을에서 살고 있는 김금규(72) 옹은 “용머리는 나무도 함부로 자르면 안된다”며, 나무를 자르면 마을에 꼭 무슨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언덕에 올라서니 물메기를 말리는 미조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왼편으로 꺾으면 이웃 마을인 대항마을로 가는 추도 일주로로 접어든다.

    20여 분을 걸어 도착한 대항마을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도대체 마을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을을 한참 돌아보다 다행히 담벼락 아래서 겨울 햇살을 즐기고 있는 두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대부분인 대항마을에서도 물메기를 잡는다. 하지만 이웃 미조마을에 비하면 ‘새 발에 피’다.

    추도에서 마을이 가장 큰 대항마을에는 예전엔 추도분교도 있었지만 오래전 폐쇄되고 지금은 흉가로 변해 있다.

    그나마 마을 중앙의 ‘추도 보건지소’는 주민들의 가장 큰 위안이다. 보건지소장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왕진을 나갔는지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고 연락처와 방문 진료 장소만 남겨져 있다.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어민이 통발을 손질하고 있다. /이준희기자/


    추도 일주도로를 따라 이어진 5분 거리의 샛개마을로 들어서자 할아버지 한 분이 바닷가 방파제에서 긴 장대를 이용해 뭔가 열심히 잡고 있다.

    소주 한 잔을 하기 위해 ‘군소’를 잡고 있단다. 5~6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샛개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보다 빈집이 더 많은 것 같다.

    자식들을 모두 도시로 내보냈다는 할아버지는 “예전엔 한 집에 14~15명이 우글거리며 살았는데 지금은 다 떠나고 나이 든 노인들만 1~2명씩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며 섬 생활의 애환을 털어 놓는다.

    추도는 통영의 다른 섬에 비해 특별히 아름다운 절경을 내세울 만한 명소는 없다. 하지만 눈길이 닿는 곳마다 다정다감한 남쪽 섬의 풍치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섬이다. 특히 미조마을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용머리는 선이 고운 두미도를 배경으로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화산의 용암이 분출돼 형성된 기암괴석으로 뒤덮인 추도는 섬 특유의 지명들이 많다. 가마솥처럼 둥글게 생겨 ‘가매(가마)바우, 수리가 찾아든다는 ‘수리바우’, 큰 북처럼 생겨 ‘북바우’, 사람이 흔들면 쉽게 흔들리는 ‘흔들바우’ 등 다양한 지명을 가진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햇살에 반사된 겨울바다의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질 무렵 돌아갈 정기선의 뱃고동이 저 멀리서 울린다.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가는 길= 통영여객선 터미널에서 학림도, 송도, 저도, 연대도, 만지도를 거쳐 추도로 가는 정기여객선(한려페리호)은 하루 2차례(오전 7시, 오후 3시30분) 운항된다. 요금은 7350원. 문의 통영여객선터미널 ☏644-8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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