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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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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쌀 소비와 전통주-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

  • 기사입력 : 2009-10-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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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위 고향 가는 길. 벼 이삭들이 영글어 황금벌판을 이루니 절로 흥겹다. 풍년이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리 기쁜 내색이 아니다. 과잉생산이란다. 쌀 자급자족을 꿈꾸던 시절이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남아돌아서 걱정이다. 현재 국내 쌀 재고량이 82만t인데, 올해 추수가 끝나면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쌀 재고량이 증가함에 따라 올 수확기 쌀값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그런데 쌀 소비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작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75.8kg이었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무려 23.4kg이나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결국 1년을 기준으로 할 때 100만t 가까이 쌀 소비가 줄어든 셈이다. 이처럼 해마다 쌀 소비는 줄어들고 최소시장접근(MMA)에 따라 수입해야 하는 쌀의 물량은 해마다 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체 작물의 재배, 대북지원, 수출 등 쌀 재고량을 줄이기 위한 여러 대책이 논의되고 있으나 여러 가지 한계와 장애요인이 있다. 결국 또 다른 방안은 쌀 소비의 확대이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쌀 소비 확대를 위한 장단기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당장은 아침밥 먹기, 후식으로 식혜와 떡 먹기, 결식아동 돕기 등과 같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쌀 가공 산업의 활성화를 장기적인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요즘 쌀국수, 쌀라면과 같은 쌀 가공식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지만, 사실 연간 200만t에 달하는 밀가루 시장의 일부를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쌀 막걸리 또한 화제다. 유산균이 많아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이웃 일본에서의 막걸리 인기 등에 힘입어 막걸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이야 쌀 막걸리가 일반화되었지만, 1982년 새해 들어 일시적으로 쌀 막걸리 주조가 허용되었다. 정초 새벽부터 밀가루 막걸리가 아닌 쌀 막걸리를 먹겠다고 양조장 앞에 줄을 서 기다리기도 했다. 1965년에 제정된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된 지 얼마만이었던가.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의 한 부분이다. 마을마다 술이 익어간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일곱 집에 한 집 꼴로 술을 빚어 마시던 수많은 가양주(家釀酒)들이 있었다. 주세법, 주세령 등으로 이 땅에서 술을 빚어 마시던 전통은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 거의 사라진다. 해방 후 양곡관리법은 전통주의 명맥을 더욱 희미하게 만든다.

    밀가루로 빚어 맛도 그렇고 숙취가 심했던 막걸리, 밑술을 증류해서 빚은 말 그대로의 소주(燒酒)가 아니라 고구마나 당밀로 만든 주정을 물에 타 만든 희석식 소주가 일상화된다. 술맛은 획일화되고 맛을 즐기기보다는 취하기 위해 마신다. 최근에는 와인과 일본 청주(사케)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 와인은 포도의 품종·주조 지역과 연도에 따라 맛이 다르고, 일본 청주 또한 쌀의 도정 정도·지역·숙성 정도에 따라 술맛이 다르다. 이 다양한 술맛을 예찬하고 즐기는 이들이 많다.

    조선시대 말 문헌상으로도 400여 종의 우리 술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술은 쌀·찹쌀·보리·밀·조·수수·옥수수 등 주재료에 따라, 술을 마시는 때와 빚는 시기에 따라 술의 종류가 다르다. 또한 일야주(一夜酒)를 비롯하여 일일주와 삼일주·칠일주·십일주·스무주·백일주·일년주·천일주 등과 같이 술이 익는 기간에 따라서도 술 이름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빚는 방법에서 다양하기 때문에 똑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다.

    우리 술의 주재료는 단연코 쌀이다. 쌀로 빚은 다양한 탁주, 청주, 소주가 있었다. 최근 들어 정부도 전통주의 복원과 보급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가위에 고향에서 빚은 술을 조상께 올리고 친지와 같이 나누면서 풍년을 기뻐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아니 쉽게 접할 수 있고 다양해진 우리 술맛을 벗들과 함께 즐길 날을 꿈꾼다.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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