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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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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48) 남강 21- 진주 이반성면~함안 군북면

수백년 고택부터 암벽 불상까지 역사 속 문화유산이 …

  • 기사입력 : 2009-09-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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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애사 극락보전


    도천재


    생육신 조려 선생 어계생가 지나면

    홍살문·무지개다리 있는 서산서원

    굽이굽이 산길 찾아 닿은 마애사엔

    보물 제159호 약사여래 마애불 반겨

    시골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엔

    주민 무사평안 빌었던 지석묘도

    이른 새벽이면 안개바다가 천상의 세계를 연출하는

    성전암을 내려서는 길이다.

    남강으로 흘러드는 샛강을 따라가는 산길에는

    우거진 넝쿨 사이로 어름도 보이고

    어느새 밤나무에 달린 밤송이도 가을을 재촉한다.

    길가에도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고

    화단에 핀 백일홍과 울타리에 걸린 석류도 빨갛게 익어 간다. 무더운 여름을 보낸 들판에는

    벼들이 영글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그러나 그보다 여행에서 더욱 큰 즐거움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히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텅빈 경전선 평촌역에서 철길과 함께 가는 도로를 따라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방향으로 여정을 잡으면

    작은 저수지들이 따가운 햇살에 벼가 익어가는 들판과

    어우러져 있었다.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도로변에 세워진 이정표를 따라

    어계생가로 갔다.


    어계생가

    ◇ 어계생가·서산서원

    어계생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생가 옆에는 종가를 지키는 조설자(80) 할머니가 살고 있다. 지난해 명절 다음 날 찾아갔더니 종손의 절제와 정갈함이 묻어나는 술상을 내놓았다. 고향 냄새가 풍기는 툇마루에 앉으면 80년 인고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의 삶이 녹아 있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20살에 시집을 와서 양산 물금으로 피난하여 보름 만에 아들을 낳았고 아들의 얼굴만 보고 군에 입대한 남편이 전사했다고 한다. 주검으로 돌아온 남편을 집안 어른들께서 여자는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얼굴을 확인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늘 살아서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희망으로 대문을 열어 두었다고 했다. 그래도 이제 초로에 들어선 아들과 장성한 손자 이야기를 할 때면 할머니의 얼굴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흔적이 잠시 지나가는 미소가 피어오른다.

    생가는 조선시대 문신 어계 조려(1420∼1489)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조려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뒤 왕의 얼을 동학사에 모신 분이다. 그 후 어계 선생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채는 3칸으로 솟을대문을 두었고 옆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재실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조선후기 민가의 평범한 양식을 갖춘 검소한 느낌을 주는 팔작지붕이다. 원북리 철길 건너 절벽에는 후손이 어계선생을 기리며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매운 선비의 절개를 뜻하는 百世淸風(백세청풍)이 새겨져 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는 생가를 나서 마을 어귀에 서면 홍살문과 무지개다리가 있는 서산서원이 있다. 서산서원은 조선 숙종 계미년(1703)에 생육신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남효온 등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하였다. 숙종 계사년(1713)에 조정에서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무진년(1868)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83년 조려선생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산서원 부근에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충의공 조종도와 부인을 기리는 쌍절각과 고려 말 벼슬을 지낸 조열을 기리는 신도비가 있다. 조열은 거문고와 그림에 뛰어나 달 밝은 밤에 거문고를 타면 소리가 수십 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방어산 마애불

    ◇ 마애사·방어산 마애불

    서산서원을 나오니 한낮의 따가운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도로변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마애사 2km라고 되어 있었다. 방어산으로 가는 잘 포장된 좁은 산비탈 도로를 지나면 새 단장을 한 마애사 일주문이 있다. 마애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에 세워진,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절집이다. 마애사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괘방산, 방어산, 보물 제159호 방어산 마애불을 찾아 여러 차례 다녔던 길이다.

    방어산 마애불은 필자가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 지킴이로 위촉되어 있다.

    마애사 절집을 여러 차례 지나쳐 갔지만 공양을 한 적이 없어서 머뭇거리는데 공양주 보살께서 들어오라고 했다. 몇몇 절집 식구들이 식사를 하는 옆 빈자리에 앉으려는데 다른 밥상에 있던 스님께서 옆자리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카메라 가방을 보더니 대뜸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냥 사진이나 찍는다고 했더니 그게 뭐 돈 되겠냐고 했다. 한번은 만나 보고 싶었던 마애사 주지 무진스님이었다.

    주지스님의 유명세는 익히 풍문으로 들었지만 막상 1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누어 보니 그야말로 거침없는 달변이었다. 독경과 염불소리만이 고요한 산사에서 음악회를 처음 열어 인근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모여 들어 성황을 이루었다고 했다. 승합차량을 홍보차량으로 만들어 마산, 창원, 진해, 함안 행정구역 통합을 위해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공양주 보살이 간식으로 내온 밤과 커피를 마시고 나서 일어섰다.

    산신각 뒤로 마애불 가는 길이 있다. 아담한 오솔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는데 언제부터인지 계단으로 만들어 버려 예전에 산길을 걸어가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계단을 피해 숲속으로 산길을 찾아 올라가는데 잠시면 닿을 수 있는 길을 산속을 1시간 쯤 헤매다 보니 온몸이 땀에 범벅이 되어 마애불 뒤쪽 능선에 와 있었다. 철계단을 내려와서 바라보니 마애불은 여전히 따가운 태양 빛을 전면으로 받고 있었다.

    불상의 본존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서 약사여래상임을 알 수 있으며 얼굴이 타원형으로 길게 표현되었다. 어깨는 거대한 몸에 비해 좁게 표현되었고, 힘없이 표현된 신체에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이는 불상 양식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모두 본존을 향하여 자연스럽게 서 있다. 왼쪽 일광보살은 남성적인 강렬한 인상이고, 오른쪽 월광보살은 온화하고 우아하며 눈썹 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월광보살 아래쪽에 ‘貞元十七年辛巳三月’이라고 새겨진 명문을 보면 통일 신라 애장왕 2년(801)의 것이다.


    명관리 지석묘

    ◇ 도천재 단서죽백·명관리 지석묘

    경전선의 간이역이 있는 원북역 부근 건널목을 건너 낮은 산을 넘으면 여름 장맛비로 넉넉하게 물이 차있는 명관저수지가 있다. 제방 둑 인근에 오면 시골 향기가 가득 풍기는 찻집이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에 새겨진 도천재 이정표를 따라 하마비를 지나 200m쯤 가면 아담한 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인조 3년(1625)에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이휴복(1568∼1624)에게 임금이 내려준 공신교서가 있다.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는 숲이 있다. 조선 성종 11년에 이계운이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였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선박용으로 베어 가고 6·25전쟁 때에도 수난을 당하였으나,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숲이 조성되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정월 대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정성껏 동신제를 올리고 무사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명관리 지석묘는 동신제를 올리는 제단석으로 쓰기 위해 들판에 있던 것을 1991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숲에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쉬어 가도록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여행 TIP <맛집 >

    ●순흥식당=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90-4. 이상용 ☏ 055) 585-3232. 정식 5000원·돼지 주물럭 7000원·두루치기 정식 6000원. 주인이 손수 농사를 지어 만드는 신토불이 재료를 사용한다.

    ●남천가든=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286-1. 김남천 ☏ 055) 585-2233. 한방 삼계탕 8000원·유황오리주물럭 2만5000원. 인근 농촌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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