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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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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 김학규(고성 철성중 교장)

  • 기사입력 : 2009-08-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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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급식을 하니 체감할 수 없는 얘기지만 궁핍한 시대를 살아온 나이 든 어른들에게는 함께 경험한 가슴 아린 얘기 한 토막이다.

    옆자리 친구는 나란히 앉아 있는 친구의 도시락에 언제나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알루미늄 도시락이 벌어질 정도로 꾹꾹 눌러 담은 밥에는 언제나 머리카락 한두 오라기가 밥 속에 있었다.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머리카락을 골라내고 밥을 맛있게 먹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친구의 어머니가 불결한 모습으로 연상되었다. 두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자기 집으로 함께 가서 놀자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아마 너무 가난해서 자기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가 보다” 하고 다른 친구는 생각했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 하루는 자기 집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다른 친구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그 친구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다. 비탈 동네를 지나 골목길을 더듬어 달동네의 다 쓰러져 가는 집 앞에 다다랐다.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며 “어머니!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더듬더듬 나오신 그 친구의 어머니는 아들 친구의 손도 잡아 보고, 머리도 쓰다듬고, 얼굴도 만지며 반갑게 맞이했다. “아들한테 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늘 친절하게 도와주다니…. 참으로 고맙다”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안내되어 방으로 들어가 앉아 친구 어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친구의 어머니는 눈이 어두운 분이셨다. 아! 도시락에 머리카락을 말없이 소중히 골라내고 밥 속에 있던 돌도 소리 없이 씹고 우물우물 삼키던 친구, 그 친구의 어머니 사랑에 늘 불결한 어머니로 연상했던 친구는 오히려 자기 마음이 불결하다고 생각했다.

    참 세상이 순간순간 변하고 있다. 어제는 옳았던 것이 오늘은 옳지 못하고 어제 옳지 못했던 것이 오늘은 빛을 내고 있다. 가치관의 혼재, 증오 바이러스에 감염되듯 모두들 미워하는 풍조, 너무나 오염된 언어, 메마른 감정, 건조한 사회, 생존 전략의 무한 경쟁구도, 숨 막힐 듯이 가속된 변화의 물결, 용서를 조건으로 ‘네가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겠다’며 평행선 구조의 타협 없는 사회, 살아갈수록 엉킨 실타래처럼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의 실수나 부족함을 이성이라는 무기와 합리화라는 명분으로 날카롭게 날을 세워 해부하고 분석하여 상대방을 무참하게 난도질하는 것이 똑똑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덕을 세우는 데는 거리가 멀다.

    눈 어두운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오히려 어머니를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아들, 밥에 섞인 돌을 씹고도, 우물우물 어머니 눈물을 생각하며 삼키는 아들의 마음이 더욱 한 줄기 빛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상적인 마음일까.

    모든 분야에서 머리카락과 돌을 골라내되 오히려 그것을 덜어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9월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학규(고성 철성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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