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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복날, 보양식에 대한 짧은 생각-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

  • 기사입력 : 2009-07-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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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은 중복이다. ‘탕 한 그릇’ 하자는 말이 절로 나온다. 복달임이다. 삼복에 더위를 견디기 위해 기운을 돋우고 몸을 보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복달임의 으뜸은 개장국을 먹는 것이었다. 여름철엔 겉으론 열이 나지만 정작 몸 안은 차갑다고 한다. 따라서 더운 성질을 지닌 개고기는 양기를 돋우고 허한 것을 보충한다고 생각했다. 먹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술과 음식을 즐겼으니, 이를 복놀이라 했다. 해안가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다.

    개장국 외에 복중음식으로 육개장, 삼계탕, 민어탕, 임자수탕이 있다. 삼계탕은 계삼탕이라고도 하는데 어린 오골계를 푹 고아 먹는 음식이었다. 오늘날에는 검은 영계 대신에 흰 영계를 사용한다. 요즘에 맛보기가 어려운 임자수탕은 미나리·오이채·버섯·등골전 등을 녹말에 씌워 데쳐서 깻국에 넣어 만든 차가운 탕이다. 그리고 장어탕, 민물매운탕, 추어탕 또한 복날 음식으로 제격이다. 모두들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하는 보양식들이다. 게다가 음양의 조화까지 고려하였으니 이보다 과학적인 건강식이 어디 있을까 싶다.

    우리 조상들은 “약과 음식은 뿌리가 같다”고 여겼다. 약식동원(藥食同源), 한마디로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이다. 평소에 음식을 고루 섭취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몸이 허해지면 기를 보충하기 위해 보양식들을 먹어왔다. 어찌 보면 보양식들은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보양식을 지나치게 많이 찾는다. 게다가 몸에 좋다는 것을 모아 놓은 종합 보양식들도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슨 근거를 따르는지 모르겠지만 각종 한약재를 넣어 만든 음식이 몸에 좋다고 선전한다는 것이다. 약을 음식 삼아 먹는 것이 약식동원이 된 셈이다. 또한 텔레비전의 여러 음식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먹을거리가 다 약이다. 이것은 여기에 좋고 저것은 거기에 좋다는 식이다.

    언뜻 음식을 음식으로서 즐기는 즐거움은 없는 듯하다. 18세기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은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슬기로운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고 하였다. 물질적으로 여유 있는 자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오랫동안 배고픈 시절을 겪어야 했던 이들에게는 먹는 게 생존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지금에는 몸에 좋다고 하면 맛을 즐기는 것은 뒷전이다.

    미식(美食), 여유 있는 자만의 놀이가 아니다. 눈 내린 듯한 꽃등심만을 찾는다고 해서 미식가는 아니다. 부추와 방아잎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넣은 부추장떡의 향긋한 맛을 즐길 줄 알아도 미식가다. 재래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의 구수한 맛을 알아도 미식가다. 더위에 지쳐 무뎌진 입맛을 오이지에 물에 만 밥 한 그릇으로 되살리는 즐거움도 미식이다.

    오뉴월 보리타작에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서 보리밥 한 그릇에 열무김치와 풋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는 맛도 꿀맛이다. 맑은 개울물에서 잡은 민물고기들로 매운탕을 끓여 시원한 물가 버드나무 아래서 먹는 맛이야 말로 정말 꿀맛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야”라고. 물론 아니다. 우리는 고도 산업화와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삶과 음식문화가 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복날 복놀이할 수 있는 여유는 사라져 버리고 도심의 식당으로 보양식만을 찾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평소 먹을거리를 고루 먹으면서 건강을 챙기고 참맛을 즐기는 여유, 즉 진정한 미식의 즐거움을 누리기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바쁘게 살아 물질적 여유가 있을수록 더욱더 그리고 자주 허해진 몸을 보양식으로 챙겨야 하는 삶이라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되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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