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심강보의 논술탐험] (65) 글에 메시지를 담는 방법

주제 주어진 글쓰기는 왜 어려울까

  • 기사입력 : 2009-06-17 00:00:00
  •   

  • 글짱: 안녕하세요. 고교 1학년 효정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고입 준비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다 이제 여유가 생겨 쓴 글을 올려 봅니다. 예전처럼 첨삭 조언을 받고 싶어서요.

    글샘: 오랜만이네. 효정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쓴 독후감 ‘파이 이야기’는 이곳 논술탐험에서 잘 쓴 글로 소개하기도 했지.

    글짱: 고교생이 되니까 어떤 느낌을 담아야 무게 있는 글이 될지 고민 돼요. 이번 글은 몇 달 전에 물자절약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 공모용으로 써 본 거예요. 다시 쓴다면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할까요?

    글샘: 효정이가 쓴 글의 얼개를 살펴보자. 1.절약정신 실종 사례 → 2.외국과 비교(수돗물) → 3.물자절약 소홀한 이유 → 4.어린 시절 사례(누비이불) → 5.물자(자원)의 중요성 순으로 서술했구나. 글머리는 눈길을 끌 수 있게끔 이야기체로 잘 전개했어. 무슨 글인지 읽어보고 싶을 정도니까 말이야. 다만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내용이 길고 군더더기가 많은 편이야. 간결하게 다듬었으면 좋겠어. 글샘이 글머리를 대략 첨삭해 볼 테니 비교해 보거라.

    ●다듬은 글

    아침 조회 시간. 선생님이 묻는다.

    “이 체육복 주인 없나요?”

    반 아이들은 한참 동안 대답이 없다.

    “여기 문제집도 있네. 잃어버린 학생은 찾아가세요.”

    그러나 손을 드는 아이는 없다. 주인 잃은 체육복과 문제집은 교실에서 뒹굴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만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학교에서 이런 모습을 보아 왔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렇게 교실에 버려지는 학용품을 하나하나 모아서 쓰는 학생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학생의 알뜰한 생활습관을 본받고 싶은 마음보다는 ‘요즘 학생들의 절약 정신이 얼마나 부족했으면 이런 프로그램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짱: 훨씬 매끄럽네요. 그런데 제 글에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제대로 담겨 있는 것 같나요? 누구나 알 수 있는 얘기가 대부분인 건 아닌지요?

    글샘: 솔직히 메시지는 조금 약한 편이야. 그건 아마도 물자절약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특별한 글감이 없어서 그럴거야. 호국보훈, 양성평등, 물의 날 등 특정 주제가 주어진 글을 쓰기가 어려운 건, 내 주변에서 적절한 글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야. 농촌 학생들은 뒷산에 흐르는 시냇물을 마시는 체험 사례로 ‘물의 날’에 맞춰 글을 쉽게 쓸 수도 있잖아. 반면에 도시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물은, TV에서 본 다큐프로그램 이야기나, 슈퍼에서 파는 생수, 집에 있는 정수기 이용 사례 정도가 아닐까. 그런 주제에 딱 들어맞는 글감을 찾을 수 있는 건 어쩌면 행운이요, 축복이랄 수 있지.

    글짱: 그러면 체험이나 제 주변 이야기와 같은 글감이 마땅찮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 써 나가는 게 좋을까요?

    글샘: 글쎄다. 만약 지금 내게 물의 중요성을 얘기하라고 하면, 지금 쉽게 접하는 생수병을 병원의 환자들이 영양제로 맞는 링거액으로 비유하고 싶어. 어쩌면 몇년 뒤엔 생수마저도 모자라거나 물값이 폭등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가정해 보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물자절약 못지않게 환경 보전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논지로 글을 써 보는 ‘발상의 전환’도 해보고 싶단다. 또 속담을 인용해 ‘돈을 물 쓰듯 하는’ 시대가 ‘물을 돈 쓰듯 하는’ 시대로 바뀐다고 경종을 울릴 수도 있겠지. 그리고 한때 ‘절약이 미덕’이란 말이 경제 구호로 유행했지만, 지금은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 이러한 시대 상황에 견줘 아무리 소비가 미덕인 시대일지라도 절약만큼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할 수도 있겠지. 그런 내용이 본론이나 결론 부분 어디쯤 들어가도록 다듬으면 훨씬 멋진 글이 되리라 생각한단다.

    글짱: 이번 글에선 특히 마무리 부분을 쓰기가 어려웠어요. 제목으로 정한 <물자의 눈짓 designtimesp=8533>을 재강조하는 문장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제가 봐도 결론 치고는 밋밋한 느낌이에요.

    글샘: 결론을 어떠어떠하게 쓰라고 집어 말하긴 어렵구나. 효정이가 다시 다듬은 글에 어떤 사례나 인용을 담았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지. 만약 글샘이 조언한 부분을 글에 추가한다면, 현재 청소년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담은 메시지 문구가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한번 고민해 보거라. 이 글엔 효정이의 생각이 담겨야 하니까. (편집부장)

    ☞ 고교 1학년 효정의 습작글 ‘물자의 눈짓’ <요약>

    아침 조회 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교탁 위를 보시더니 말씀하신다.

    “체육복 잃어버린 사람?” 한참 동안 대답이 없다.

    “여기 문제집도 있네요. 주인은 나와서 가져가세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문제집을 들고 풀이 흔적까지 설명해 주시지만 역시 손을 드는 아이는 없다. 결국 갈 곳 없는 체육복과 문제집은 교실을 떠돌아다니다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벌써 올해로 10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한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조그만 지우개, 뚜껑 잃은 볼펜 하나라도 반드시 굴러다니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잘만 모으면 수년 뒤에는 각종 문구류를 쉽게 갖출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텔레비전에서 비싼 학용품 대신 사물함 뒤나 교실에서 버려지는 물건을 주워 쓰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 남들이 버린 것이라 쓸 수 없을 것 같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주인 없는 물건의 대다수가 충분히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간 생략)

    사람들이 물자 절약에 소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그들이 물자의 한정성과 소중함을 무심코 간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존재는 있을 때보다 없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 나의 보물 1호는 조그만 누비이불이었다. 그 꼬마아이에게는 인형이나 장난감보다 아기 때부터 덮고 자던, 솜털 같은 그 이불이 더 좋았나 보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이불이 사라졌을 때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중간 생략)

    그만큼 우리 옆에 항상 지니고 있던 존재의 부재감은 더 큰 것이다. 물자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중간 생략)

    물자에는 우리가 부여할 수 있는 의미가 참 많다. 물을 맘껏 마실 수 없는 환경에 있는 가난한 아이들과 깨끗한 물이 없어 흙탕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우리 땅에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고 물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더운 여름 날 땡볕 아래서 땀 흘린 뒤 마시는 시원한 물이 주는 행복은 얼마나 큰지. (중간 생략)

    물, 에너지, 우리의 생활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것들…. 자원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물자를 잘 절약해야 우리도 후손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물자 절약은 큰 의미가 아닐까? 물자가 의미 있는 눈짓으로 다가올 때에, 그 소중한 무엇이 될 때에 우리는 그것을 진정으로 아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끝>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심강보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