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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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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강정운(창원대 행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9-05-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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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자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년기 이후에는 긴 세월을 부산에서 지낸 경남과 부산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경남과 부산이 자연인으로서는 물론 정치인으로서도 소중한 인연을 맺은 장소이다. 장소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몸과 마음의 고향을 잃어 감을 아쉬워하면서 지낸다. 그러므로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시대에 부산과 경남이라는 추억의 공간을 공유했던 많은 사람들은 고인의 서거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낄 것 같다. 추운 어느 겨울날 부산 서면의 골목 어디에선가 마주쳤을 것 같기도 한 그 사람, 주말이면 김해 진영의 집에 들러 어머니께서 싸주신 반찬거리를 들고 부산의 자취방으로 쓸쓸하게 돌아 왔을 것 같은 그 사람, 분노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많은 사람들을 가슴 시원하게 하면서 당황하게도 했던 그 사람은 불꽃같은 삶의 끝자락을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 끝부분인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처럼 마무리했다. 힘들어서 떠나고 싶었던 고향 마을, 그렇지만 다시 돌아오고 싶어 했었고 결국은 돌아 왔던 그 마을의, 그것도 힘들 때 올라가곤 했던 뒷산 바위 바로 그 자리에서 생을 끝낸 그 사람의 사연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개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임에 비해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지방자치와 분권, 지역균형발전, 권위주의 해소, 지역 대립구도의 타파, 사회적 형평성의 증대, 그리고 과거사 정리는 한국사회의 권력구조 및 분배구조 개편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비록 이와 같은 정치적 이상 및 정책과제가 현실적 이해관계의 벽에 부딪혀 성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가 추구했던 가치와 사회변화의 열망은 존중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분노의 정치가 미움의 정치를 증폭시켰고 그가 시도한 변혁 드라이브는 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킨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권위주의 문화의 타파에 기여한 만큼 자신의 권위도 던져 버리면서 때론 대통령직의 권위와 품위에 대한 평균적 기대를 저버리기도 했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차피 정치란 것이 공익이란 명분하에 각자가 자신의 가치와 만족을 극대화하는 사회적 게임이라고 볼 때 보수, 진보, 중도 등 사람이 만든 문패에 무슨 절대 불변의 의미가 있겠는가?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사에서 드물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정치인이다. 그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한국인들에게 그리움과 추억을 남겨준 정치인이 되었다. 적과 동지의 구분이 어려운 정치무대에서 오랜 세월 동안 신뢰할 수 있는 많은 동지를 가졌던 고인은 개인 정치인으로서는 성공적 삶을 누린 셈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된 보도에서 “정말 부패한 사람들은 부패와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개혁가였다. 범죄자들은 범죄와 함께 살아간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다”라는 영국 출신 한국통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브린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와 죽음은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발현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는 진정 어질고 바른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타내는 감정적 카타르시스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우리 모두가 겪은 격동의 현대사를 향수로 되새김하고 있기도 하다. 이미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사회적 파장은 극대화되었다. 그러므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충격적 사실이 정치적 전략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정치적 성향을 띤 극단적 발언들은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더 이상 정치적 가치의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행동들은 자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며 고인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분열과 반목의 계기가 아닌 공존과 평화의 전기로 만들 책임은 우리 모두의 상호 이해와 노력에 달려 있다. 오늘은 고인의 영결식이 거행되는 날이다. 우리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고인의 다음 삶이 평안하길 빌어야겠다. 가시는 길 편히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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