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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절망을 넘어 희망의 부활로-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 기사입력 : 2009-04-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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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의 빵을 먹어보기 전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인생의 가치는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 뒤 올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시련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지난 한 주간(4월6일-11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한 수난 주간이었고 12일은 다시 살아나신 부활주일이었다. 과학적인 잣대로 그 사실 여부를 논하기 전에 이는 절망을 넘어 희망의 새싹을 틔우는 인류 최고의 소망의 메시지이다.

    지금 만물은 이러한 부활의 소식과 함께 차가운 겨울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내고 봄꽃 잔치를 넘어 신록의 계절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봄이 돌아와 만물이 소생해도 여전히 얼어붙은 겨울의 차가움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어 두는 어리석은 이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들은 수난 주간에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십자가형을 언도한 불의한 재판관 빌라도이다.

    그런데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중에 저들의 행위가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이후의 삶을 새로움으로 부활시키지 못하고 결국 자살의 길들을 택한 데 있다. 결국 저들은 죄의식의 음지에 스스로를 계속 가두어 두고 자학의 행위를 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되었다. 이것이 훨씬 더 큰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죄악의 음지를 털고 일어난 이들도 있다. 사도 바울과 다윗 같은 이들이다. 바울은 원래 초기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핍박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다윗도 한때는 부하의 아내를 간음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그 부하를 죽음의 전쟁터로 내몬 큰 죄를 지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다.

    몇일 전 어떤 일간지에서 1만2000명을 학살한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주범 중의 한 명인 카잉 궉 이압이 기독교인이 되고난 후 “내 죄를 참회합니다”라고 하며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비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참회와 함께 새로운 부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위의 사람들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은 어떠한가? 각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은 그 문제를 과거의 일보다는 얼마나 반성하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두고 있다. 이것이 또한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의 정신이며 부활의 메시지이다. 그래서 간음하다 끌려온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며 새 삶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절) 라고 하셨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새로움만 있다면 항상 용서와 기회를 주시며, 재기의 발걸음을 도와주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그분의 넓은 용서의 치마폭에 안기며, 부활의 새 소망을 가지고 희망 안고 달려가야 되지 않을까? 이것이 꽃피는 부활의 봄날에 예수님이 만인에게 주시는 메시지이다.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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