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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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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정직한 손, 착한 손-정일근(시인)

  • 기사입력 : 2009-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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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여름을 동티모르에서 보냈다. 동티모르 산간지역인 ‘로뚜뚜’라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면(面)과 같은 행정단위의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의 유일한 소득원인 아라비카 커피농사를 도우며 취재했다. 우리에겐 친숙한 나라인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21세기 최초의 신생 독립국가다. 강원도 크기만 한 넓이에 70만 정도의 인구가 사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연간 국민소득은 500달러가 되지 않는다.

    수도인 딜리도 밤 12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올 뿐 내가 머문 로뚜뚜 지역은 해발 1200m 이상에 있는 산간마을로 전기는 없고 도로도 개설되지 않아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전형적인 산간 오지마을이다.

    하지만 가톨릭 국가인 동티모르 고산지대에는 ‘신의 선물’처럼 최고급 커피 품종인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그건 신이 동티모르에 내린 축복이었다. 동티모르 고산지대의 가난한 커피농사를 돕기 위해 세계 각국의 비정부단체(NGO)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이 동티모르 커피농사를 돕는 기본정신은 ‘공정무역’(fair trade)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NGO들이 판매하는 공정무역 상품을 선호하는 ‘착한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어 낯선 용어는 아니지만, 공정무역이란 기업의 절대적 이윤을 추구하는 무역 형태가 아니라 생산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들에게 합당한 이윤을 돌려주는 아름다운 거래다. 동티모르에서 생산되는 고급 커피열매를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싼값에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여 커피농사를 짓는 그곳 사람들이 생산과 판매에 건강한 자생력을 기르도록 여러 부문을 지원하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티모르 커피농사는 힘든 일이었다. 커피열매를 따기 위해 험한 산길을 오가야 하고, 숲이 우거진 곳에서 한 알 한 알 붉은 열매만 골라 따야 하고, 운송수단인 말이 있는 집에서는 많은 양을 수확해서 옮길 수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이고 질 수 있는 하루 분의 양만을 수확해서 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가족들이 다 모여서 그날 수확한 커피열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 마을 공동 구매장에 내놓는다.

    공정무역을 하는 NGO들은 마을 원로회의에 커피열매 구매를 맡기는데 원로회의는 익지 않은 푸른 열매가 들어 있는 커피는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또한 반드시 그날 딴 신선한 커피열매만 구매한다. 그 조건으로 NGO들은 마을주민들과 협의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한다. 거기다 주민을 고용해 커피 가공장을 운영하고, 공동우물이나 교실을 만드는 등 마을을 위한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그렇다고 공정무역이 자선이나 원조는 아니다. 기존 무역에 비해 평균 20∼30%의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만 유통단계를 최소화해 제품 가격을 낮추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도 이득이 된다. 물론 품질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인이 하루에 마시는 커피가 50억 잔이 넘는다고 한다. 동티모르 로뚜뚜 마을에서 돌아와서 나는 반드시 공정무역으로 구입한 커피만 마신다. 우리가 쉽게 마시는 커피 한 잔 속에 커피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노력하는 ‘정직한 손’이 있다는 것을 알면, 내가 마시는 커피가 그들에게 꿈과 희망이 된다는 것을 알면, 이제는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도 공정무역연합(www.fairtradekorea.net)이 생겼다.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는 공정무역으로 구입한 ‘착한 초콜릿’을 판매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정무역은 공정무역연합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가게, 두레생협연합회, YWCA, 한국생협연대 등이 부분적으로 공정무역을 시도하고 있는 초기 단계다. 거래되는 상품도 커피, 의류, 생활소품, 장난감, 축구공, 초콜릿, 설탕, 식품, 와인 등 120여 종 정도다.

    하지만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라는 공정무역에 대해 생각하는 의식 있는 소비자들의 착한 손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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