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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녹색성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 - 강정운(창원대 행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9-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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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과 성장의 이례적 결합으로 탄생한 녹색성장이 국가발전의 패러다임으로 선포된 이후 공공정책의 여러 부문에 걸쳐 녹색성장 드라이브에 힘이 실리고 있다. 녹색성장은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경제발전 전략임과 동시에 경제위기 극복 대안으로서도 추진되고 있다. 녹색성장이 공공정책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한국과 인류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녹색성장 정책은 대체에너지, 저공해자동차, 탄소시장 등 관련 산업 발전의 전기를 제공함은 물론, 생산과 소비 패턴의 변화를 비롯해서 우리 삶의 질에도 큰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EU, 일본의 에너지 및 환경기술에 대한 관심은 세계정치경제 질서의 중요한 축인 에너지 및 환경 부문의 글로벌 시장전략이자 패권 경쟁의 단면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녹색성장을 발전 정책의 중심에 두는 것은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한국의 녹색성장은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동안 국내에서 여러 이해관계의 장벽에 막혀 있던 에너지 및 첨단 환경산업의 발전에는 결정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정부 프로그램들을 녹색성장이라는 우산 아래 집결시키는 시너지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대와 함께 성급하게 단기적 업적을 실현하려는 욕구가 녹색성장의 진정한 목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우려되기도 한다.

    녹색성장이 권력 및 자원의 중심에 가까워지는 첩경이라는 정치적 계산과 관료적 충성심이 녹색성장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들을 무분별하게 탄생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녹색성장 정책이 본연의 범주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은 자원효율성 측면에서 경계되어야 한다. 그리고 녹색성장 관련 프로그램들이 단기적 고용 창출에 집중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녹색성장은 상당 부분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신기술 및 융합기술의 개발에 대한 건실한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녹색성장 정책의 성공은 전략적 목표의 설정과 효율적 투자에 달려 있지, 상징적 구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부의 공문에 따라 지역의 자율적 조직이어야 할 녹색성장 포럼과 그린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단시일 내에 조직되는 과정에서 한국행정의 강력한 중앙집권성 및 획일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녹색성장 정책이 관료적 형식주의와 단기적 실적주의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녹색성장 프로그램은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녹색성장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 부여에 따른 정부예산 전체의 효율성도 분석의 대상이다. 예산과정이 정치과정으로서의 성격을 띠기는 하나 녹색성장 사업에의 지나친 집중이 다른 정부 사업의 계속성과 효율성을 상대적으로 무력화시킴으로써 막대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의 녹색뉴딜을 녹색도박이라고 비판한 지난 1월 8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의 다소 무리한 표현도 한번쯤은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중앙정부의 녹색성장 드라이브는 저절로 지방정부의 최우선적 정책 과제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지방정부들이 녹색성장 정책을 추진할 제도적, 심리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지역에서 단기적 실적 중심의 프로그램을 양산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녹색성장 프로그램의 지역 특화와 이에 따른 전략적 집중이다. 녹색이란 용어도 좀 더 선별적이고 책임감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하이닉스반도체 미국공장이 소재했던 오리건주 유진은 미국 내에서 대표적인 친환경도시의 하나이며 2006년 전미 녹색도시 1위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적 삶을 추구하는 이 도시에서 녹색이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이처럼 외국의 유수한 친환경도시들은 녹색이란 단어를 구호로써 가볍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녹색뿐 아니라 생태라는 용어마저도 상징적 수식어로 무리하게 남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녹색이란 용어가 무책임하게 사용되어 그것의 진정한 가치가 왜곡되고 녹색성장의 의미도 퇴색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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