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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젊은 백수들에게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9-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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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업 시즌이다. 한국의 장래를 짊어질 우리의 젊은 영웅들이 낯선 사회로 나서고 있다. 상아탑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의 출발점이란 흔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이들을 기꺼이 맞이해야 할 우리 사회는 준비가 덜 돼 있다. 다행히 셋 중에 한 명 정도는 용케도 일할 자리를 구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이제부터 언제 끝날지도 모를 실업 시즌에 들어서야 한다.

    몰락한 어느 재벌 총수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지만 세상이 넓은들, 또 할 일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동서남북으로 기웃거리며 이력서를 던져 보지만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다. 척박한 현실에 돌아보면 초조하고 눈을 감아도 불안하리라. 불어터진 게 시간이지만 앉으나 서나 우울하고 때론 암울할 것이다. 그동안 공짜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 부모님을 보노라면 신세타령이 절로 날 법도 하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라. 엎어진 김에 쉬어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국의 청년 백수는 죄가 아니다. 적어도 절반은 앞선 세대와 사회에 책임이 있다. 기왕에 백수 길로 들어섰다면 긴 호흡을 하고 멀리 내다보라. 만고의 진리를 읊은 공자님도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 而志于學), 서른이 되어서야 자립하였으며(三十而立), 마흔 삶에 판단에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四十而不惑)고 고백했다.

    젊다는 것, 그것은 찬란한 것이다. 젊기에 고뇌할 수 있고 방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고 미지의 X에 느낌표를 찍을 수 있다. 인생의 빈 노트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다시금 생각해 보라. 인생의 빈 노트에 무엇을 써야 할지 만년필이나 볼펜이 아니라 지우개 달린 연필로 쓰고 지우고, 지우고 또 쓰면서 새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워 보라. 험난한 인생길에 직업은 인생 자체이며, 행복 자체일 수 있다. 급하다고 덥석 잡을 일은 아니다. 방황하고 찾아 헤매면서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더욱 유연하고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최근 외신이 전한 미국 청년백수의 직업 도전기는 좋은 사례가 된다. 남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청년은 겨우 기회를 잡아 면접 인터뷰를 보면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2년여 동안 40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직접 경험을 쌓겠다며 고물 지프에 컴퓨터와 휴대전화만 갖고 50개 주에서 1개씩 총 50개 직업에 도전하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창고관리 보조직을 시작으로 옥수수농장 일꾼, 보일러 설치기사 등을 거쳐 현재 21번째 직업인 바텐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졸자로선 힘에 겨웠겠지만 희망과 낙천주의를 배우게 됐다는 그의 경험담이 듣기에 좋다.

    경제가 가파르게 내려앉고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청년 취업 상황은 참담하다. 지난달 24만개의 일자리가 날아갔다. 전체 일자리 감소(10만3000개)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취업 재수는 이미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말로만 듣던 장미족(장기간 미취업 상태에 있는 사람)을 언제 벗어날지 기약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백수기간 동안 꼭 명심할 게 있다. ‘습관을 이기라’는 것이다. 나쁜 습관은 고쳐 나가고 좋은 습관은 지키라는 뜻이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의지 문제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고 가슴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이 다 큰 자식 자존심 상할까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론 혀를 차고 있을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는 일이다.

    또 힘들고 어려울 땐 가족에게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은 어느 누구보다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될 수 있다. 참고로 오래전 모 인기작가가 아들에게 띄웠다는 편지를 옮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세상으로 나가는 아들아. 세상은 끊임없이 너의 믿음을 저버릴 것이요, 쉴 새 없이 너를 다치게 할 것이다. 그때 기억해다오. 집은 언제라도 돌아와 세상에 맞서 싸울 힘을 충전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금요칼럼

    이 선 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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