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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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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0) 중앙의 역사, 지방의 역사

지방의 눈으로 본 ‘중앙집권화’의 본질은?

  • 기사입력 : 2009-02-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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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무엇일까? 중고등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중앙집권화’라는 단어를 많이 꼽는다.

    역사에서는 중앙집권화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타난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고구려의 중앙집권화, 백제의 중앙집권화, 신라의 중앙집권화, 고려의 중앙집권화 등이 있다.

    중앙집권화에 성공하면 강력한 왕권을 가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서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시켜 그 나라의 전성기를 활짝 연다. 보통 이런 임금들이 오랫동안 기억되고, 위인전에도 이름이 오른다.

    이렇게 본다면 중앙집권화는 역사에서 매우 좋은 방향으로 해석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방에 있어 중앙집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중앙집권화는 국가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일사불란하게 지휘함으로써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앙집권화가 완성되면 과거 중앙권력이 동원하지 못했던 지방민들과 지방의 경제력을 임금의 명령 한마디면 바로 동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과 자원, 권력이 모두 중앙으로 집결한다. 이렇게 중앙이 점차 커지면서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귀족이나 토호들은 점점 중앙으로 몰려든다.

    이리하여 중앙은 비대해지며, 중앙권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몇몇은 온 나라의 백성들과 경제력을 한 손에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이를 빼앗기 위한 쟁탈전이 중앙에서 벌어진다. 중앙에 의한 국가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반면 지방은 국가의 역사에 끌려가기 시작한다. 지방에 있어 중앙집권화란 역사를 빼앗기는 것이다.

    비대해진 중앙권력의 정점에 선 임금은 더욱 지방에 대한 착취를 일삼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착취하지 않으면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언제 어떻게 쫓겨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지방은 가혹한 착취에 시달린다. 이러한 착취는 백성들의 이탈로 이어지며, 백성들은 도적이 되거나 이민족의 침입에 쉽게 노출되어 삶의 기반이 붕괴된다.

    또한 중앙의 비대화는 필연적으로 국가 운영의 비효율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에게 나간 녹봉이 조선 전체 예산의 절반에 이르렀다는 통계는 중앙의 비대화가 국가 운영의 비효율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분노한 지방의 백성들은 중앙권력에 대항하여 항쟁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중앙권력이 보낸 군대에 형편없이 무너지지만 차츰 항쟁이 확대되면서 중앙권력은 허둥대기 시작한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지방 세력을 모아 자립을 선언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자립한 세력은 스스로의 군사를 거느리고, 중앙권력과의 단절을 통해 지방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 이제 중앙권력의 거대한 착취는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지방권력에 약간의 충성만 행사하면 된다.

    중앙권력은 이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방권력을 쥔 자들의 기득권과 지방민들의 결합을 끊기는 쉽지 않다. 지방은 사실상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역사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면서 중앙집권화는 무너지게 된다.

    중앙과 지방은 이렇게 역사적 주도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근대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대체로 중앙에 의한 국가의 역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좁은 영토, 한정된 인구에서 근 1000년 이상의 역사를 보냈기 때문에, 중앙은 지방의 움직임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오랜 관료 시스템으로 정교해진 중앙권력을 지방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흐름들이 중앙으로 모여들게 된다.

    1991년 기초의원 선거(3월 26일)와 광역의원 선거(6월 20일)를 치름으로써 30여년 만에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위 사진은 1991년 3월 창원 상북초등학교서 열린 기초의원 선거 합동연설회. 아래 사진은 1995년 6월 27일 동시지방선거 때 지리산 청학동 주민들이 경운기를 타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모습./경남신문DB/

    근대를 넘어 현대에 오면서 중앙은 더욱 비대해지기 시작한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중앙과 지방 간에 존재하던 물리적 장벽마저 사라지면서 중앙은 더욱 확실하게 지방을 잠식해갔다. 급기야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민주국가에서 지방권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도지사, 시장, 군수를 대통령이 임명하며, 지방의회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중앙에서 처리되고 지방에서는 그저 떡 하나 떨어질까 구경만 하고 있었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고, 지방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의 역사도 다시금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방예산은 여전히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고, 지방 시민사회단체들과 언론들도 많건 적건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정권이 바뀐 후로는 그마저도 끊어져 어려운 살림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중앙과 지방이 이원화되어 있으면 비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지방의회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서 보다시피 중앙의 비대화는 지방에 큰 고통으로 이어진다. 정치인은 중앙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지역에서의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지역민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중앙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한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결제를 할 때마다 결제 금액은 자동으로 서울 본사로 올라가 지방의 경제력은 나날이 쇠퇴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세금 수취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재판을 받으려 해도, 서류를 떼기 위해서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도 항상 먼 거리를 올라가야 한다. 과연 이것을 효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지방은 아무런 의사결정권도 가지지 못한 채 중앙의 역사에 의해 지방의 역사도 자동으로 결정된다. 대한민국 서울시가 붕괴하면 대한민국이 붕괴하고, 자동으로 경상남도도 붕괴할 것이다. 결국 이 나라의 주권은 서울시 안에만 있는 것이다.

    지방의 역사가 없고, 지방의 의사결정권이 없다는 것은 고대나 중세와 다를 바 없이 지방은 늘 백성이며, 동원의 대상이며, 경제적 착취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앙의 역사, 지방의 역사 중 어느 것이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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