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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겨울 초입에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8-1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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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휴가철에 흔히 듣던 한가한 소리가 아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집에 가라’는 얘기다. 올 겨울 산업현장에 혹독한 바람이 불 거라고 한다. 한파 예고는 각종 경제지표를 들여다볼 것도 없다. 중고기계 시장에 ‘땡처리’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감원·감산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내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인 조선산업은 언제 반등할지 ‘며느리도 모른다’고 할 정도다. 해운업의 침체가 곧바로 조선업체 수주 감소와 취소로 이어져 동반 불황을 낳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한 건의 배도 수주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도 단 3척 수주에 그쳤다. 중소 조선업체들은 은행 드나들기에 더 바쁘다. 자동차 업계는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불황에 대비하는 모습이고 여느 현장도 오십보백보다. 전 산업에 걸쳐 팔고 줄이고 안 뽑는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다.

    사정이 이러니 당장 고통스럽다고 구조조정을 미뤄선 안 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으레 위기가 기회란 말도 뒤따른다. 한 발 앞선 선제적 구조조정이 더 큰 아픔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전 이맘때 귀 따갑게 들었던 내용이다.

    말이 쉽지 무 자르듯이 누군 남고 누군 집에 가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비정규직이 1차 대상이 될 것이고, 또 한 차례 귀중한 인생들을 나이에 따라 일렬횡대로 세워 놓고 밀어내고 끌어 올리는 식의 감원작업이 진행될 게 뻔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강조될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경제환경이 근로자들만의 책임인가. 갑작스런 나라 안팎의 사정이나 핑계 대며 한 치 앞도 못 본 경영진이 오히려 책임져야 할 일 아닌가. 그렇다면 구조조정의 칼끝부터 들이댈 것이 아니라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자세가 아쉽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거나 ‘한솥밥’을 먹어야 한다는 우리 고유의 부조정신이 그것이다. 회사는 정리해고에 앞서 감산과 휴업을, 직원들은 임금 동결과 축소로 최악의 위기를 맞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 옳은 수순일 것이다.

    곧 닥칠 경제 한파는 전 세대에 걸쳐 예외가 없다. 현실은 현실이다. 우선 청년백수들은 채용시장의 문이 좁아진 터라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내준 일자리도 넘볼 수 있으면 넘봐야 한다. 20~30대 직장인들도 한 우물만 파기엔 세상 돌아가는 형국이 녹록하지가 않다. 최근 모 온라인 취업사이트에서 직장인 10명 중 8명이 ‘투잡’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도 이를 반영한다. 자투리 시간조차 내기 힘들겠지만 장기전에 대비해 틈틈이 ‘경제 체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또 전례에 비춰 40·50대가 경제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40·50대는 그간 경제 사정이 좀 나아지긴 해도 IMF 때 진 주름살이 그대로 남아 있고 졸랐던 허리띠도 제대로 풀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그라지고 오그라든 나이 탓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낙동강 오리알도 인내하며 부화하기 나름이라고 하지 아니하던가. 오히려 인생 이모작을 가꿀 수 있는 호기일 수 있다. 꼭 기름진 땅이라야 대수이겠는가. 보리면 어떻고 좁쌀인들 또 어떻겠는가.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 문턱에 들어선 게 틀림없다. 겨울이 좋은 이유가 사랑하는 이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더 큰 이유는 봄이 오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겨울이 좋은’ 시 한 수 옮긴다.

    ‘새벽 찬바람에 떨어진 이파리는 보도 위에 사랑해요를 수놓고, 동지섣달 긴 밤을 지새운 작은 새는 쪽빛 하늘에 곱은 손으로 임을 그린다. 노란 햇살이 움츠린 대지를 어루만지면 시린 가슴에 피어나는 따뜻한 임의 미소… (중략)… 겨울은 다시 준비하는 안식의 시간, 봄 여름 가을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내 안의 사랑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유세 중에 던진 메시지가 귀에 쏙 들어온다.

    ‘YES, WE CAN.(그래요, 우린 할 수 있어요.)’

    금요칼럼

    이 선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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