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금요칼럼] 너도 잘못을 알겠느냐 - 장성진(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8-10-31 00:00:00
  •   
  • 옛날 고을 수령들이 부임하면 관내의 유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론을 파악하는 일을 먼저 하였는데, 부유한 사람도 면담 대상에 포함되었다. 어떤 사또가 들어앉고 얼마쯤 지나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자 은근히 화가 났다. 좀 어리숙한 부자를 하나 불러들여 다짜고짜 다그쳤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무슨 말씀인지요?”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간에 불목한 불효불목죄.” 불효를 인정하면 불효가 맞고, 부인하면 그것이 곧 불효이다. 그런데 그 백성이 하는 말, “저는 강보에 싸인 채 조실부모한 고아라서 불효조차 못 해 본 게 한이고, 형제자매가 없는지라 불목조차 부럽구만요. 그것도 죄라면 죄이지요.” “이놈, 말대꾸를 그리 하니 관장모독죄를 추가하노라.”

    벼농사가 유례없는 풍작을 이룬 해이지만 영농 비용이 크게 오른 데다 벼 수매가가 더 낮아져 농심이 피곤한 터에 때 아닌 쌀 직불금 문제가 불거져 농촌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술렁댄다. 용어조차 낯선 사람들에서부터 읍면사무소의 공무원들까지 분노하거나 바빠졌다.

    한국이 단계적으로 국제 무역기구에 가입하고 각종 협약을 맺으면서 수출입 물량과 관세 등 여러 기준을 수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영 환경이 열악한 농업 분야는 큰 타격을 받았으며, 특히 벼농사는 그 전통과 국민적 정서까지 더해져 오랜 기간 난제로 남아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벼농사를 직영하는 농민에게 줄어드는 수익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제도로 봉합되었는데, 그 방안의 하나가 이른바 쌀 직불제이다.

    그런데 제도가 시행되고 서너 해 지나서 점검해 보니, 직영을 하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받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경작 수령자가 17만3497명이나 되며, 그중 본인과 가족을 포함한 공직자가 3만9971가구, 공기업 종사자가 6213가구나 되었다. 게다가 이 문제가 국회의 감사 과정에서 불거져 여야간의 힘겨루기까지 가세되었다. 한쪽에서는 너희가 집권할 때 벌어진 일 아니냐는 식이고, 한쪽에서는 너희 편이 많지 않으냐는 식이다. 서로 할 테면 해 보자고 덤비니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당연히 정부의 대책이 나오고 조급한 김에 설익은 보고 지시 서류가 연달아 날아다녔다.

    ‘본인,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이 수령한 경우’를 신고 대상으로 설정해 두고, ‘부모가 부모 본인 명의로 토지를 구입해서 수령한 경우는 제외함’, ‘부모 소유로 실제 경작하여 부모 명의로 수령한 경우도 모두 포함’, ‘위법 부당 수령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하게 수령한 경우도 포함’까지 2~3일 사이에 보고 의무 수위가 높아졌다. 더구나 신고서에는 내용을 해당 행정기구에 제공하는 데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모두 동의하였음을 확인한다는 단서까지 붙었다. “네 죄를 알렷다”에서 “네 부모 죄까지 알렷다”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세대를 달리하는 직계 존비속이 직계존속 명의의 농지를 자경한 경우는 제외함”으로 바뀌었다. “네 죄를 알렷다”로 되돌아왔다.

    법은 엄정하고 규정은 명백해야 한다. 그리고 집행은 정확하고 잘잘못은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본인과 존속을 구분해야 한다. 죄를 가족에게 연좌시키지 않는 것이 왕도정치의 요건이라고 맹자가 왕에게 가르쳤다. 둘째, 불법과 상황 변동을 구분해야 한다. 농업 인구는 대다수가 고령자들이다. 한 해 사이에도 질병, 부상 또는 그 이상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을 범법자와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셋째, 실제 경작자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육십대 젊은 조카가 팔십대 늙은 숙부의 논 수백 평을 양식거리로 경작해 줄 수도 있다. 곁들여 이로 인해 사람 좋은 시골 이장이 곤란을 겪는 일이 있어도 안 된다. 이런 바탕에서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혼란과 갈등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되물을 차례이다. “너도 네 잘못을 알겠느냐?”

    장성진(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