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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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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한가위 단상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8-09-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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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틀 밤만 자면 추석이다. 고향에선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차례 준비에 분주하고, 고향길을 찾는 이들은 묵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닦으며 막혔던 시간여행을 떠날 것이다. 어린 시절 추석빔으로 받은 고무신을 신고 껑충거렸던 중년층들이라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로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날 듯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란 시를 통해 명절 분위기의 정겨움을 담아냈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말이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사정과 형편에 따라 각자 추석을 맞는 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설레는 마음의 부피는 다를 리 없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여야 할 것 없이 추석 민심잡기에 바쁘다. 홍보용 당보도 듬뿍 찍어냈다. 지역구마다 붙임막도 나부낀다. 정치권의 ‘추석 상차림’이 새삼스런 것은 아니지만 ‘생활공감정책’에다 설익은 ‘인스턴트 정책’까지 유난을 떤다. 뒷짐 지고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민심을 챙기고 달랜다고 민심이 잡히겠는가. 민심은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다. 고향길이 누군가 억지로 가라 한들 가는 길이 아니고 오라고 강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설하고, 올 추석은 연휴가 짧아 여느 때보다 숨가쁘게 움직여야 될 듯싶다. 그러나 추석이 주는 의미는 한결같다. 추석은 감사하는 시간이다. 가을의 풍요를 가져다 준 자연에 감사하고, 함께 일한 선후배와 동료, 그리고 이웃에 감사하고, 자신의 삶을 가능하게 한 조상에 차례를 지내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무엇보다 살아 생전에, 설사 이 세상에 없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언제부턴가 조상묘 앞에 서면 내가 죽은 후 자식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그려 본다.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묘를 찾는 횟수가 일 년에 다섯 손가락도 채 되지 않는 나의 행동이 어떻게 비쳤을까. 그러고 보면 추석은 반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 모 매체에서 이번 추석엔 부모님의 건강을 꼭 챙겨 주자는 보도가 있었다. 자식에게 짐이 될까 말은 안 하지만 고혈압·관절염 등 3개 이상 만성질환을 가진 어르신이 2명 중 1명꼴이라고 한다. 전체 유병률은 90%가 넘는다고 하니 해외여행이나 선물 꾸러미가 대수이겠는가. 건강부터 챙겨 드리는 게 도리일 것 같다.

    물론 자식들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오죽할까마는, 명절이나 생신 때가 아니면 찾기 힘들고 훌쩍 왔다 바쁘게 떠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삶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꼭 잘해 드리겠다고 다짐한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번 고향길엔 부모님 마음에 드리워진 주름살까지 펴 드렸으면 싶다. 설사 멀리서 못 찾아 뵙더라도 자주 안부를 물어 ‘말벗 도우미’를 따로 둘 필요가 없도록 했으면 한다. 글을 쓰다 보니 나부터 후회막급이다.

    추석은 또 배려와 나눔의 시간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절을 살아 오면서도 조금 더 나은 이웃이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문화가 있었다. 선조들이 비단옷을 입고도 나들이할 때는 두루마기를 걸쳤다든가, 고기를 구울 때 문을 닫은 것은 어려운 이웃을 배려한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누어 먹었다고 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도 생겼다.

    사람은 혼자 살 수가 없다. 제비 다리를 고쳐준 대가로 일확천금을 얻은 흥부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망각한 채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생각을 못 했다는 점일 것이다.

    1년 중 8월의 보름달빛이 가장 밝다고 한다. 올해도 빈부 차로 추석 모습이 양극화란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하지만 달빛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은잔에 비치든 사발잔에 비치든 보름달의 본디 모습이 어찌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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