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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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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국궁과 양궁의 촌수 관계 - 장성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8-08-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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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 올림픽이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개회식은 소위 중화 문명의 과거를 현대적 신기술로 재현하였는데, 유럽과 아메리카 사람들은 감탄하였으나 아시아인은 다소 못마땅하였다. 폐회식은 그것을 또 미래 비전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런 분위기와 맞물려 성적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달라졌다. 이제 세계의 젊은이들은 자기의 성적표를 울부짖으면서 조국에 바치는 지독한 애국자에서 순간의 기쁨과 안타까움을 누리는 운동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국가별 메달 숫자 경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각 종목의 기록 관리와 앞 시기 성적의 계승 여부에 눈길이 더 모아졌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 양궁이다. 한국 양궁은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정상을 유지해 왔으며, 이번 올림픽에서도 그러한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 양궁의 원동력에 대하여 지역의 한 원로 궁도(국궁)인은 의미 있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가 젊은 궁도 지도자로 활동할 때 한국에 양궁이 도입되고 협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외국 지도자 영입을 생각도 못 하던 때인지라, 생소한 양궁을 다루고 손질하며, 선수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일, 심지어 기본 교재를 편찬하는 일까지도 국궁 지도자들이 적극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효율 면에서 최선은 아니었다. 대부분 중년 이상 연령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심신의 수련을 목적으로 하는 여가 활동인 궁도와, 젊은 선수들이 전문적으로 기량을 연마하여 경기에서 성적 내기를 목적으로 하는 양궁은 훈련 방법과 과정이 같을 수 없었으며, 활의 구조와 조준 방식 등 서로 다른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에 앞서 궁도의 기본 정신과 예절, 강령 등을 철저히 확립하고, 기술을 비교 응용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원칙을 적용한 셈이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국궁과 양궁은 친형제는 아니라도 사촌은 되었다.

    지금까지 계승되는 한국 궁도의 계훈은 매우 엄격하고 종합적이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인(仁), 남과 남의 활을 대하는 예(禮), 절조와 과감성을 중시하는 의(義), 겸손과 성실로 이것을 유지하는 신(信) 같은 항목이 그것이다. 이들은 공자가 말한 바 “활쏘기는 어짊을 닦는 도이기 때문에 맞지 않으면 자기에게 돌이켜서 구한다”, “군자는 다투지 않지만 활쏘기에는 예로써 군자답게 다툰다” 등 교훈에 근거하였다. 그리고 예기에서 규정한 사례(射禮)를 공동체의 예와 규범으로 오래 실천해 왔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오늘날 전국적으로 시군 단위에는 평균 두세 개씩의 궁도장이 있으며, 도내에도 50여 개가 있다. 그리고 각지에서 부단한 경기와 대회가 열린다.

    되풀이 방영되는 화면 속의 선수들을 다시 살펴보면 그들은 결코 초인도 아니고 다른 별에서 온 사람도 아닌 이 민족의 젊은이들이다. 극도로 감정이 절제된 표정과 주변의 소란에 미동도 하지 않는 몸가짐은 어쩌면 노궁사의 말처럼 진정으로 정신을 앞세운 전통의 현대적 발현이 아닌가도 싶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공간의 끈이 있듯이 보이지 않는 시간의 끈도 있다. 이것을 흔히 전통이라 부른다. 너무 각박하게 벼랑 끝에서 부딪히는 좌와 우의 자리다툼도,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소통될 수 있는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장 성 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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