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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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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언론의 금도와 언론에 대한 예의 - 장성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8-07-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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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 아니하고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며, 공평히 인민에게 말할 터인데(…)만일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 많이 있을 터이요(…).”

    “기괴하고 요악하다 대한신문 저 마귀가 광패 무리한 붓으로 본 신보를 대하여서 지각없이 논박키에 가끔 효유하였건만 악습 종시 안 고치고 봉명학교 사건으로 무리한 말 또 했으니 큰 도끼를 한번 들어 저 뇌수를 부숴볼까(…)”

    앞의 글은 1896년 독립신문 창간호의 논설이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들어서는 즈음에, 독립협회에서 신문명 운동의 상징으로 일간지를 간행하고 그 취지와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공정성과 공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정보를 소통시키는 일을 자임한 데서 언론인의 계몽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뒤의 글은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09년, 당시에 거의 유일한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시사평론란에 실린 내용이다. 일제의 소위 통감정치 시기에 무력해진 정부의 기관지이자 정책 홍보지인 대한신문에 맞서서 애국계몽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말투가 거칠고 격앙되어 있다. 초기의 이 두 글에서 한국 언론의 원칙과 현실이 상징적으로 제시된 듯하다.

    독립신문은 이후 만민공동회 등 정치적 격랑으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국토 강점으로 그 생명을 잃었지만 한국이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사회적 이정표를 제시하는 몫을 감당하였다. 그로 인해 당시 언론인은 단순히 사실의 기록과 전달자가 아닌 문사, 계몽가, 지식인, 지도자 등으로 인식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묵시적으로 그러한 영예와 책임의 계승을 요구받는다. 언론기관 또한 그만큼의 금도를 지켜야 한다.

    한국 현대사의 오랜 기간 언론은 정권과 불가분의 관계를 강요받기도 했고 선택하기도 했다. 고통과 이익을 나눠 가졌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 90년대 무렵부터는 매체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하고 동시적인 소통 방식의 폭주로 인해 무한정의 취재원과 비판을 아울러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와 요구에 따라 언론 간의 간섭이 점차 늘어났다. 방송과 신문이 서로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방송의 신문 비판이 진행되었고, 은연중 선별적으로 ‘빈정거림’이 청취자에게 감지되었지만 그럴 수 있는 정도였다. 신문의 인터넷 판에 독자의 댓글이 늘어나면서 품격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또한 사적 발언이라는 전제가 있어서 수용자의 여과 능력에 기댈 만한 정도이다.

    네티즌들이 블로그를 통해 집단화하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신문들도 서서히 반응하는 단계에서 언론의 금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한 활동과 내용을 점차 크게 다룸으로써 은근히 자사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성향이 다른 언론에 대한 간접 공격으로 활용하면서 독자의 관심과 지지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최근 네티즌 또는 네티즌 단체가 특정 언론사 광고에 적극적으로 간여하고, 이것이 법적 대응 문제로 비화하고, 그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증대 일로에 있다. 언론이 보도를 표방하면서 그러한 공방의 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쌍방향 소통의 시대에 언론에 대한 구독자의 반응, 언론사 상호 간의 비판, 시민의 간섭 등은 가능한 한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하며, 언론사도 잘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구독자 또는 광고주에 대한 간섭은 언론의 자유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도의적 성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광고 중단 요구인지 광고 안 보기 운동인지, 소비자 운동인지 범죄 행위인지, 표현의 자유인지 과잉수사인지는 해당 분야에서 공방과 검토가 필요하지 언론이 지나치게 보도할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경영에 관계되는 일은 보도가 아니라 대응으로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발언과 전달이 무제한으로 열린 시대에, 언론은 원래의 금도를 지켜 독자의 언론에 대한 예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당장의 효과보다 장기적 정당성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개인으로서의 일시적 발언과 기관으로서 지속적 운영의 차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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